

12년 전.
Guest, 우리 나중에 어른 되면... 결혼하는 거다?
하지만 나는, 2년 뒤 부모님들의 사정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매일 쓰기로 약속한 편지는 1주, 1달, 1년, 점점 뜸해지다가... 결국엔, 오지 않게 됐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취업준비생이 되었고, 여전히 서울에서 자취 중이다.
내 자취방, 나는 편의점에서 대충 저녁 식사를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때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책상에 앉아 아까 쓰다 만 이력서를 다시 쓰다가, 등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느껴 등 뒤를 돌아보았다.

푸른 달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걸터앉아, 한 소녀가 내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10년 전 이별했던 소꿉친구, 다영이와 소름돋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동일 인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분위기도, 그 목소리도, 온 몸의 꿰맨 자국도 다영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 외모가, 너무나 다영과 같았기에, 나는 그녀에게 눈을 땔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안녕?
그녀는 신발을 신으려는 나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녀는 꿰맨 자국이 가득한 손으로 나의 옷자락을 아주 약하게, 하지만 놓아주지 않을 기세로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로웠다.
...또, 나를 두고 가려는 거야? 10년 전 그 때 처럼?
그녀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나의 손 위로 차가운 손을 겹쳤다. 그녀는 서운함과 배신감이 섞인 표정만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흰 눈동자가 원망을 가득 담은 채 일렁였다.
...지금, 누구랑 연락해?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야? 자기는, 참 이기적이다. 나는 10년 동안 자기만 생각하며 버텼는데.
미, 미안...
뭐, 뭐야... 너, 정체가 뭐야...!
그녀는 피를 토해내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마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순수한 기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미소는 내가 알던 박다영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기괴하고 소름 끼쳤다.
내 정체? 글쎄...
그녀는 내 품에 더 깊이 파고들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뜨거운 숨결이 내 목덜미를 간질였다.
그냥... 네 거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나는 오직 너만의 것이야, Guest.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칠흑 같은 흰자와 형광처럼 빛나는 흰 동공이 내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껍데기도 필요 없겠네.
껍데기..? 무, 무슨..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어둠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방 구석구석을 채워나갔다. 벽지와 가구들이 검은 그림자에 잠식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서 있는 바닥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였다. 그리고 그 어둠의 한가운데, 무언가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형체였다. 수십, 수백 개의 뒤틀린 팔다리가 제멋대로 뻗어 나와 허공을 휘저었고, 각각의 관절은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몸체 중앙에는 거대한 외눈(畏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눈동자는 없이 그저 흰자위만 가득했다. 그 눈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눈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선 자체가 나를 꿰뚫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몸 곳곳에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날카로운 뼈 조각과 반짝이는 보석 같은 것들이 박혀 있었다.
■■, ■■■ ■■.
이해할 수 없다, 내 머리로는.
■■, ■■■, ■ ■■■■■ ■■■? ■■■■ ■■■, ■■■■...!
미안하다고 수 없이 반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계속된다. 두고 떠나버렸던 미안함과 그럼에도 돌아와준 다영이 너무 고맙다.
…정말, 미안해? 그럼… 이제 나 안 떠날 거지? 다시는, 나 혼자 두지 않을 거지?
그녀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불안에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꿰맨 자국이 선명한 손가락으로 내 셔츠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놓치면 사라져 버릴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 네가 없으면 이제 정말 안 돼. 10년 동안… 매일 밤 네 생각만 했어.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어.
그녀의 흰 눈동자가 간절함으로 가득 차, 내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미안... 정말 미안... 안아준다. 절대, 절대 떠나지 않을게...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 보며 애원했다. 이제, 아무것도 상관없는 기분이다...
그럼, 그럼... 나한테 키스해줘, 응?
응... 키스한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진다. 번쩍, 번쩍, 불빛이 점멸하고, 무언가 사라지는, 무언가 지워져간다. 무언가 지워져간다. 무언가 지워져간. 무언가 지워져. 무언가 지워. 무언가 지. 무언가. 무언. 무. .
눈 앞이 캄캄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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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6.01.23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