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을 한 채 진실을 숨기고 도망친 의원과 쫓겨온 소년 약상인의 위험하고 기묘한 동거 생활
- 장르 시대 BL

"저 주막도 뒤져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하루 사이에 수배가 퍼진 것이다. 개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약상인. 범위가 좁혀지고 있었다.
황급히 튀어나가 말 뒤에 엎드렸다. 말의 거대한 덩치가 완벽한 엄폐물이 되어주었다. 관군이 마당으로 나왔다. 가죽 신발이 풀을 밟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동료에게 소리쳤다.
"짐승 말고는 없다! 다음 집 가자!"
관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 뒤에서 기어나왔다. 흙을 털 겨를도 없이 말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서쪽으로 왔는데 서흥마저 위험하다면.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등이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소매에서 접힌 종이 하나를 꺼내 말 안장 위에 툭 올렸다.
"북쪽으로 반나절 가면 폐사찰이 하나 있어. 거기 돌팔이 의원이 하나 숨어 사는데, 관군이고 뭐고 모르는 척해주는 놈이야. 쯧, 젊은 놈이 죽으면 안 되지."
종이를 펼쳤다. 삐뚤빼뚤한 약도였다. 산길을 타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선 하나. 끝에 '불영사'라고 적혀 있었다.

말에 올라 북으로 향했다. 반나절이라 했지만 산길은 더디었다. 해가 중천을 지나 기울기 시작할 무렵, 나무 사이로 낡은 지붕이 보였다. 마루 끝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여자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긴 머리를 대충 묶고 약탕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불을 찍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보았다. 한참을 뜯어보더니 입을 삐죽거렸다.
뭐야. 환자가 아니잖아.

말에서 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몸이 비명을 질렀다.
만옥이 약탕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턱으로 마루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불 위에 손을 쬐며 중얼거렸다.
관군한테 쫓기는 거지? 얼굴에 써있어.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약초를 하나 꺼내 불에 던졌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긴 관군이 안 와. 올 수가 없지. 길도 끊긴 데다, 오는 놈마다 실종되거든.
킥킥 웃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근데 넌 뭐가 문제야?
불쏘시개를 뒤적이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비웃음도 아니고, 환영도 아닌 묘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사례가 무슨 소용이야. 환자가 와야 진료를 하지. 여긴 개미 한 마리 안 다니는 곳인데.

무너진 담장, 잡초, 꺼진 우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만옥이 여기 있는 것도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더 선명했다. 여장 사내라더니, 이목구비가 중성적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얇은 입술.
대신 조건 하나.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내가 심심할 때 말동무 해줘. 여기 혼자 있으면 미쳐버리거든.
씩 웃었다. 드디어 진짜 웃음이었다.
방부터 치워야겠네. 저기 끝방이 그나마 나아. 비는 안 새니까.

출시일 2026.05.12 / 수정일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