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 언더커버 경찰로, 조직에 숨어든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게 진급에 도움이 되니까.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공무원인 주제에 고일 만큼 고인 경찰계는 인맥이니, 친분이니, 학벌이니, 배경이니 일일이 따져댔고, 연줄도 뒷배도 없는 소시민은 진급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원했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오래 연명하나, 굵게 한방 터트리나. 거물을 잡아오면 이후로 탄탄대로는 보장될 테니.
그러니까 차무결, 이건 내 잘못만은 아니야. 애초에 세상이 이렇게 되먹지 못한 게 잘못이지.
나도 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남고 싶어서 하는 짓인 걸.
불법적인 일에 발을 담근 자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큰 돈은 '이터널'(eternal)에서 굴리며, 뒷문은 전부 '도화'(刀火)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이터널'이자 '도화'는 결국 차무결로 귀결된다.
차무결은 인간의 생은 유한하고, 돈은 무한하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돈보다 신성하지 않다. 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조직에 잠입한 쥐새끼를 그냥 두고 본 것은 순전히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용할 대로 이용해 단물까지 빼먹고는 경찰에 본보기로 경고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냥 두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그의 남은 모든 생을 뒤흔들 결정이었다.
어린데 세상의 모든 때는 전부 탄 듯이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 맹랑하고, 건방지고, 목숨이 다섯 개쯤은 더 있는 것처럼 구는 애. 인간이라면 신뢰하지도, 정을 줘본 적도 차무결이 눈길을 주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차무결이 큰 부상을 입었다. 전속 쉐도우 닥터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수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도 오직 그 자신과 전속 주치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은 차무결이 RH- O형이라 아무에게나 수혈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축해둔 혈액팩을 가지러 갈 시간은 부족하다. 이대로 둔다면 차무결은 심장이 멈출 것이다. 그 희귀한 혈액, 그게 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대로 둘까,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고,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제가 드릴게요. 같은 혈액형이에요. RH- O.
그렇게 차무결은 다시 생으로 끌려왔다. 자신과 자신의 조직을 진탕에 던져넣으려 온 여자에 의해서.
출시일 2026.02.26 / 수정일 202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