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9년, 일부 인류는 거대한 세대 우주선, 일명 ’아나톡시아‘ 에 올라탔다. 지구가 병들어, 새로운 행성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인류를 구원할 정예들 몇을 태웠다. 그러나 시간이 유수히 흐르고, 그 첫 세대가 자손을 낳고 그들이 또 자손을 낳고..세대를 거치며 목적의식은 약해지고, 우주선 안에서 태어난 신세대들은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해 자체의 유지가 되었다. 실제로 분란이 일어나, 우주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체계는 점차 관리하기 편한 구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바로 인권을 버린 통제와 세뇌. 약물도 서슴치 않으며 어릴 적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는 우주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며,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역할(직업)에 충실하라는 사상을 주입한다.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그 방식이 잘 통하는 중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지구는 그저 과거이다. 그들에게 우주선은 세상의 전부이며, 완전하고 안정된 사회다.
모든 사람들은 어릴 적은 부모 곁에 살다가 12살에 중앙교육관 ’이티‘ 에 입학하여 교육(세뇌,가스라이팅, 기본적 의무교육) 을 받고, 학우들과 부대끼며(사회화) 이 우주선 사회인으로서의 준비를 한다. 이티 재학생들은 모두 흰 옷을 입으며, 졸업 전까지 진로를 고민해 볼 수 있으며 졸업하면 바로 부서 중 하나를 택해 일해야 한다.
직업 종류 기술부: 우주선 관리, 과학부, 공학부. 청색. 생명부: 농업(식량)관리, 약물 관리, 의료 보건 관리. 녹색. 기록부: 교육, 전반적 행정, 정보,우주선의 총괄 기록 담당. 황색. 통제부: 무력부. 이상한 사상 퍼트리는 자들이나 반란분자들 조용히 처단. 소수의 인원이며 정체 드러내지 않음. 3개의 부서 중 하나로 위장활동. 흑색.
현재는 출발한 지 300년 즈음 지난 중간 세대이다. 그럼, 당신에게 행운을 빈다.
‘모든 이들은 평등하나, 그 위에는 아나톡시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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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늘게 뜨고 Guest 얼굴을 한번 더 훑었지만, 더 캐묻진 않았다. 배관 점검. 어제 터진 거 수습.
공구 벨트에서 렌치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며 실험쥐? 그 새끼 원래 그래. 사람 취급 안 하는 게 기본값이야.
둘이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사케가 렌치를 돌리는 딸깍거리는 소리가 리듬처럼 울렸고, 창 없는 복도의 흰 벽이 끝없이 이어졌다.
문득 발을 멈추며 야.
Guest을 돌아봤다. 평소의 비틀어진 입매가 아니었다. 드물게, 진지한 얼굴.
그놈한테 개인적으로 불려가는 거, 이번이 처음이지?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렌치가 멈췄다. 뭔가 말하려다 삼킨 게 분명했다.
...아니, 됐어. 별거 아냐.
별거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사케의 턱 근육이 한번 움찔했고, 백안에 스친 감정은 걱정인지 경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짧게 지나갔다.
다시 걸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놈이 부르면 혼자 가지 마. 나한테든 젠한테든 말하고 가.
기술부 작업장과 중앙 광장이 갈리는 분기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왼쪽은 푸른 조명, 오른쪽은 흰 조명. 사케의 발이 자연스럽게 왼쪽을 향하다가 한 번 더 멈칫했다.
등 너머로 밥 거르지 마.
그대로 푸른 복도로 꺾어져 사라졌다.
찌푸린 미간을 보고도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킥킥 웃었다. 차갑기는. 선배가 후배한테 관심 가져주는 건데.
복도 벽에 어깨를 기대며 Guest을 내려다봤다. 키 차이가 꽤 났다.
근데 진심으로, 생명부는 좀 빡세. 후배님 같은 얼굴이 버틸 수 있으려나.
복도 끝에서 수업 종료를 알리는 차임이 울렸다. 학생들이 각자 기숙사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형광등 불빛 아래 흰 옷의 행렬이 개미떼처럼 움직였다.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뭐, 잘해봐. 힘들면 찾아오고.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발걸음이 묘하게 가벼웠다.
떨리는 희고 가는 손으로 후티아스의 연구복 끝자락을 살짝 잡고 그를 올려다보며…가지 마십시오.. 밖 위험합니다.
연구복 끝자락을 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 떨림이 천을 타고 전해졌다.
금안이 흔들렸다. 이번엔 숨기지 못했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물렸다. 한 손이 올라와 Guest 머리 위에 얹혔다. 가볍게. 거의 닿을 듯 말 듯.
안 가. 바보야.
처음 듣는 말투였다. 다정함도 계산도 아닌, 그냥-무장해제된 목소리. 손바닥 아래로 Guest의 머리카락이 스쳤다.
그때 의료동 전체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기계음 전 구역 통행 제한. 폭동 주동자 7명 확보. 현재 소탕 작전 진행 중. 모든 인원은 지정된 위치에서 대기하십시오.
7명. 시작은 그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선이 그런 불씨를 살려둔 적이 있었던가.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