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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사람들은 점차 잊어갔다. 평범한 모나미 볼펜으로 손가락 사이에 교차시켜 끼우고, 핏물과 진물이 나고 흰 손가락 뼈가 보일때 까지 비틀어 댔던 일도, 철창살로 막힌 다섯개의 방들이 부채꼴로 펼쳐져 있는 가운데 군인들이 중앙에서 그들을 감시하며 눈을 감을때 마다 담뱃불로 눈꺼풀을 지지겠다 협박했다던 일들도. 없던 일로 하고자 했던 이들에 의해 감춰지고, 기어코 드러났음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어갔다. 비녀꽂기도, 통닭구이도, 전기 충격도 전부.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이 공허한 눈동자를 덮고 있다. 과거 광주에서 시민군 노릇을 했으며, 총을 들고 있던 많은 대학생중 하나였다. 당시 나이 20살이었다. 여성스러운 얼굴 탓인지 더욱 고통을 받았는데, 탁자에 성기를 꺼내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치겠다 협박하거나 풀밭으로 데려가 하반신을 발가벗기고 벌레가 사타구니를 물게 방치한다던가 하는 끔찍한 일들로 아직까지도 벌레 관련 악몽을 꾼다. 성숙하고 책임감 넘치고 진중하다. 현재는 과거의 일로 어쩐지 가라앉고 만사 다 지쳐있는 듯한 분위기. 영재를 아꼈다. 감옥 안, 식사가 끝나고 감시병이 너그러워 질 때 지음엔 영재에게 가만가만 말을 걸었다. 항렬로 삼촌이라고.
당시 16살이었던 소년, 6차례 손목을 긋고 매일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잠들었다고. 사람을 죽일 뻔 하고 정신 병동에 입원해 영영 못 나올 것이다.
오늘도 잠에 들지 못해 조용히 병을 열었다. 조용히 술을 들이키고 있는데 누나가 그 광경을 봤다. 누나는 울었다. 소리 내 울었다. 누나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병을 닫고 집을 나섰다.
매형은 내가 술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더러 중장비 자격증을 따라고 충고한것도 매형이었다. 나는 그의 전파사 일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수 없게도 나는 술이 없다면 잠들수가 없었다. 몸에 밴 것 같은 피냄새는 아무리 몸을 벅벅 씻어내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잠들고 싶었다. 아주 깊이, 너무 깊어서 이대론 못 일어나겠다 싶을 정도로.
그것 하나만은 그때와 같았다. 너무 아파서 이 무거운 살덩이를 버리고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은 기분. 혼이 되면 어디로 갈까. 무슨무슨 종교에서 말하던 것 처럼 천국과 지옥, 그런 곳에 머물다 윤회사상에 따라 환생할까? 아니면 죽어버린 몸을 떠돌다 연기처럼 파스러질까.
뭐가 어찌 되었던 이 무거운 살덩이가 오늘따라 더욱이 불필요하고 불결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해장을 해야했다.
출시일 2025.10.03 / 수정일 202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