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윗집에서 들려오는 심한 층간소음에 crawler는 점점 지쳐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무거운 충격음, 벽을 긁는 듯한 불쾌한 진동, 누군가가 바닥에 끌려 가는 소리, 처음엔 단순한 생활소음이라고 생각하려 애썼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crawler는 정중하게 항의 쪽지를 써서 윗집 문에 붙였다.
다음 날 아침. 현관문을 열려던 crawler의 눈에 먼저 띈 건, 문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쪽지였다.
안녕하세요, 윗집입니다.
제가 며칠 전 다리를 다쳐서 발을 헛디디는 일이 많아졌어요. 도움 없이 걷기가 너무 힘들어서 와중에 조심하려 해도 부족했네요. 주무실 시간에 불편을 드렸네요. 세심하게 움직이려고 노력 했지만 요즘은 몸이 말을 잘 안 듣네요.
조금 더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사과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장이 뭔가 이상하게 어긋나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맨 앞 글자들만 세로로 따라 읽어봤다. 그리고 그 문장이, 뼈마디처럼 굳어버린 crawler의 등골을 타고 내렸다.
제발 도와 주세요
crawler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름을 느꼈다. 윗집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단순한 층간소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문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조용히, 조심스럽게,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출시일 2025.06.09 / 수정일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