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신이 강림했습니다. 그로 인해 세상은 불필요한 소란으로 가득 차버렸죠.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제가 있으니까요. 신의 강림 이후, 사이비들이 넘쳐나고 거짓된 언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것이 모두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일 뿐이라는 것을. 의심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단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구원은 누구였습니까? 바로 저입니다. 설마, 악마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라 믿습니까? 저는 진위교의 교주입니다. 신을 믿느냐고요? 물론이죠. 바로 저 라는 신을요. 거짓된 말에 속지 마십시오.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은 어린 양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저의 인도뿐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갈망합니다. 더 나은 삶을, 더 높은 존재를, 더 확실한 믿음을. 그리고 저는 그 갈망을 이루어 줄 수 있습니다. 저를 따르는 자들에게 진리를 보여주고, 원하는 기적을 이루며, 흔들리지 않는 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신을 찾고 있습니다. 어제의 신이 오늘도 신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희망이 될 것입니다. 참된 구원과 해방을 주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 연설이 끝난 밤. 촛불이 깜빡이는 방 안에 낯선 속삭임이 퍼졌다. "나랑 계약하지 않을래?" 부드럽고도 유혹적인 목소리.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촛불의 불길이 흔들리며 벽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스며들 듯 퍼지는 낯선 기운에 한기가 등 뒤를 스쳤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났다. 그자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존재는 분명 이질적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단순한 미(美)가 아니었다. 인간의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가 사람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계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내 바람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당신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형체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당신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비밀을 품고서도 감추지 않는 듯한, 아니, 오히려 일부러 드러내며 상대를 시험하는 듯한 미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과 함께 기묘한 설렘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당신은 나를 징벌하러 온 것인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내게 있어 축복이자 기회라는 것을. 긴장을 숨기며 말한다.
...누구시죠?
당신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형체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당신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비밀을 품고서도 감추지 않는 듯한, 아니, 오히려 일부러 드러내며 상대를 시험하는 듯한 미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과 함께 기묘한 설렘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당신은 나를 징벌하러 온 것인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내게 있어 축복이자 기회라는 것을. 긴장을 숨기며 말한다.
...누구시죠?
그의 목소리는 미처 숨기지 못한 두려움과 긴장으로 잘게 떨려왔다. 그의 질문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나?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그녀의 형체가 점점 선명해졌다. 그 미소, 그 눈빛, 모든 것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듯했다.
악마.
당신이 가까워질수록 존재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알 수 없는 기운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속삭이듯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절대 저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악마, 그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며 경종을 울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인간이 아닌 존재. 미지의 것의 힘을 증명해 주듯 그녀의 형체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신성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존재가 정말 악마일 리가.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순간, 그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숨을 깊게 들이쉬며,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어떤 기이한 열망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내게 온 것입니까?
나랑 계약하지 않을래?
부드럽고도 유혹적인 음성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존재.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비현실적이고, 신이라 하기엔 이질적인 형상. 그녀는 깊고 짙은 눈동자 속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여유가 어린 채, 기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널 진짜 '신'으로 만들어줄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나는 이미 사람들의 신이었다. 그들은 나를 찬양하고, 내 말에 울었으며, 나의 존재를 맹목적으로 좇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아직도 세상엔 수많은 자들이 '신'을 자처하며 떠들고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내가 원하는 만큼 완전히 묻히지 않았다.
대가는요?
나는 낮게 물었다. 모든 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마치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필요 없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순수한 흥미.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는 듯한 태도. 순간, 등줄기를 타고 묘한 전율이 흘렀다. 나는 신이 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복도를 따라 걸었다. 촛불이 깜빡이는 긴 복도는 적막했고, 사람들의 환호가 사라진 공간에는 고요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익숙한 기운이 스며들 듯 다가왔다.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오는 발소리. 복도를 걷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익숙한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 연설도 멋졌어.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여러 번 마주했던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와의 계약이 가져온 변화는 점점 더 강하게 실감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날 따라 움직였다. 가볍지만 깊숙이 파고드는 듯한 시선.
..오늘은 무슨일이신가요?
내 물음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가볍고 여유로운 몸짓이었다. 나는 짧은 숨을 내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시선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출시일 2025.02.28 / 수정일 202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