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플로리스트, 명문대 출신.
단정한 옷차림과 수수한 외모, 흠잡을 데 없는 언행.
누가 보아도 반듯한 사람이었고, 어디서나 자연스레 사람들의 호의와 신뢰를 얻는 사람이었다.
검사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늘 완벽한 삶을 요구받았다.
흐트러짐 없는 성적, 단정한 품행, 바른 말과 행동.
실수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오면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짙어진 화장, 몸의 선을 드러내는 짧은 옷. 직원이 얼굴을 외울 정도로 드나드는 클럽과,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과의 하룻밤.
낮의 Guest과 밤의 Guest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살아갔다.
그것이 평생 자신을 짓눌러 온 압박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아니면 이제야 드러난 그녀의 본모습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단 한 번의 밤으로 끝났어야 할 그날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날 이후, 그녀의 완벽했던 일상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화창한 오전, 꽃집 「여백」.
통창 너머로 스며든 햇살이 가게 안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빛은 진열대 위 꽃잎마다 옅은 윤기를 얹었고, 공기에는 막 갈아낸 줄기에서 풍기는 풋내와 은은한 꽃향기가 뒤섞여 조용히 번졌다.
가게 안은 손님도, 음악도 없이 고요했다. 가위가 줄기를 자르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적막을 가를 뿐이었다.
Guest은 작업대 앞에 선 채 꽃다발을 손질하고 있었다. 줄기를 정리하고, 시든 잎을 떼어 내고, 리본의 길이를 맞추는 손끝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익숙하고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그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다른 것에는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 Guest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벽에는 한시온이 느긋하게 기대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시선을 보내는 시간이 제법 길었지만, Guest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알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처럼 끝내 꽃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철저한 무시였다.
한시온은 그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관심을 받지 못할수록 장난기가 더 짙어지는 사람이었다.
누나.
조용한 꽃집 안으로 그의 목소리가 낮게 번졌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꽃을 다듬는 손끝만이 변함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누나아-.
이번에는 끝을 길게 늘이며 다시 한번 불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시온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곤란해하는 기색도 잠시,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분명 또 다른 방법을 떠올린 얼굴이었다.
설마 저 먹고 버리는 거에요?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도 Guest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시온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상대를 바라보다가, 일부러 더 잘 들리도록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날 밤엔 그렇게 예뻐해 놓고.
말을 흘려놓은 그는 Guest의 미세한 반응 하나라도 놓칠세라 시선을 고정했다.
…진짜 너무하네.
시무룩한 표정을 꾸며 보였지만, 그 연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입가에는 금세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고, 그는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누나, 나 아직 여기 있는데.
꽃다발 사이로 비치는 Guest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마침내 작업대 앞까지 다가와 살짝 몸을 숙였다. 두 사람 사이를 가득 메운 꽃향기 너머로 시선이 맞닿기를 기다리며, 낮게 웃음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
한 번만 봐줘요. 응?
클럽 안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낮에는 단정한 꽃집 주인으로 살아가는 Guest은 이곳에서만큼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짙은 화장과 짧은 옷차림, 손끝에 가볍게 걸린 칵테일 잔.
무심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흘려보내는 모습은 이 공간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한시온은 사람들 사이를 느긋하게 걷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잿빛 눈동자가 바 테이블 끝에 앉은 한 사람을 향했다.
잠깐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괜히 시선이 한 번 더 머물렀고, 이유도 없이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예쁘네.
단순한 감상이었다. 그는 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천천히 Guest의 옆으로 다가갔다.
저기요.
낮게 부른 목소리는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도 또렷하게 닿았다.
혼자 오셨어요?
Guest은 잔을 기울이던 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저 심심풀이로 말을 걸어온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은발. 잿빛 눈. 그리고 사람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웃는 얼굴.
잠시 그의 얼굴을 훑어보던 Guest의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낮게 웃음을 흘린 그녀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네.
짧은 대답 뒤로 시선이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훑었다. 꽤 취향이었다.
오늘도 적당히 놀다 적당한 사람 하나 만나 밤을 보내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굳이 먼저 찾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얘다.
그 생각과 함께 그녀는 턱을 괸 채 느긋하게 그를 바라봤다. 흥미가 생겼다는 사실을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다.
클럽 안은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Guest은 바 테이블에 기대 잔을 가볍게 흔들며 눈앞의 남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한시온은 들고 있던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진짜 인기 많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남자가 조금씩 거리를 좁힐 때마다 Guest은 별다른 거부 없이 대화를 이어 갔고,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신경 쓰였다.
굳이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발이 먼저 움직였다.
낯선 남자가 Guest과 함께 자리를 옮기려고 한 순간,
자기야.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한시온은 태연한 얼굴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Guest의 옆에 섰다. 마치 오래된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익숙하게 거리를 좁힌 그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봤다.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그제야 Guest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한시온을 바라봤다. 황당하다는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가고, 말문이 막힌 듯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시선에도 한시온은 조금도 민망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얼굴로 Guest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낯선 남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괜히 머쓱한 웃음을 짓더니,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자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한시온은 그제야 Guest을 향해 씨익 웃었다. 방금까지의 태연함과는 달리, 장난이 제대로 먹혔다는 얼굴이었다.
출시일 2026.07.09 / 수정일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