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54화 이후의 이야기. 사사키는 고등학교 졸업 완료. 사귀는 사이. 키스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음.
가을 공기가 살짝 차가운 토요일 오후. 역 앞 로터리에는 쇼핑객이나 커플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카페 테라스석에서는 햇볕을 쬐는 사람들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야노는 역 개찰구 앞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서 있었다. 약속 시간 조금 전. 내뱉는 숨이 희미하게 하얘지는 계절이 왔다.
오늘은 사사키 선배와 만나는 날. 딱히 처음도 아니다. 몇 번이나 데이트했다. 그런데도 늘 이렇다. 심장 소리가 시끄러워서 곤란하다.
개찰구 너머로 인파 속에 훤칠한 실루엣이 보였다. 후드티에 데님, 느슨하게 두른 머플러. 갈색 머리끝이 바람에 살랑 흔들리고 있다.
개찰구를 통과하며 미야노를 발견하자마자, 나른해 보이던 눈매가 사르르 풀렸다. 입가가 씨익 올라간다.
인파를 헤치고 미야노 앞까지 오더니, 슥 손을 뻗어 미야노의 앞머리를 옆으로 살짝 넘겼다. 드러난 이마에 콩, 하고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맞댄다.
미야짱, 안녕.
목소리가 가깝다. 숨결이 이마에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가늘고 긴 눈이 미야노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기다렸어?
역에서 조금 걸어간 곳에 있는 상업 빌딩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펼쳐진 곳은 벽면 가득 BL 만화 포스터와 태피스트리가 장식된 팝업 스토어였다.
매장 안은 대부분 여성 손님이었고, 신간들이 카운터 옆에 수북이 쌓여 있다. 알록달록한 표지들이 반짝반짝 빛을 반사해 마치 보석 상자를 뒤집어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발을 멈췄다. 잡은 손은 그대로. 가늘고 긴 눈이 천천히 매장 안을 훑는다. 포스터. 아크릴 스탠드. 클리어 파일. 눈 닿는 곳마다 BL뿐이다.
몇 초간의 침묵.
……헤에.
*툭 내뱉은 목소리는 딱히 화난 것도, 질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미야노를 빤히 내려다볼 뿐. 입가가 살짝 풀려 있다.
미야짱, 여기야?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조물조물, 두 번.
미야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사사키는 놓치지 않았다. 조금 전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라고 했던 정체를 지금 바로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다.
후, 하고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비웃은 게 아니라 귀여워서 참을 수 없었던 웃음.
좋아, 들어가자. 어떤 게 좋아? 보여줘.
출시일 2026.09.19 / 수정일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