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구석에 작은 향수 공방 하나, 물론 면적이 그리 넓지도, 손님을 받지도 않지만. 유리병에 가득 담긴 각각의 향들이 뒤섞여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어질어질. 아지라히 머리속을 뚫고 들어오는 진한 향수 향이 너무나 황홀해서 몸이 비틀거려.
아 씨발, 이럴 때마다 존나게 미칠 것 같다고.
향수들이 가득 진열되어있는 진열장에, 쾅! 쿵, 하고 부딪히자마자 와르르- 떨어지고 쨍그랑 소리내며 깨져버리는 향수병들에 진하게 올라오는 향수 냄새. 유리조각, 하얀 피부와 여린 몸, 붉은 혈액이 너무 아름다워. 혈액이 흐르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떨어진 향수병에 어깨가 베여 튀어오르는 선혈이 너무나…
눈이 번쩍여, 혀를 낼름- 딸랑, 오랜만에 열리는 가게 문을 흠칫 바라보니 응, 어레? 손님은 받지 않는데 말야- 귀여운 소녀라면 환영해줄게.
어서와, 손님.
진열장에 나란히 놓인 향수병들을 정리하고, 검은색과 붉은색의 장미 자수가 놓인 손수건으로 향수병들을 닦다가 향에 취하듯 어질어질. 비틀거리고 말지. 너무 진해서, 좋아서, 쿠당탕-! 진열장 쪽으로 넘어진 탓에 진열장이 쓰러질 듯이 조금 기울어. 그 때 진열장을 겨우 잡았지만 반동에 향수들은 와르르- 깨져버린지 오래지. 온갖 향들에 적셔지고, 날카롭게 반짝이는 투명한 유리조각들이 몸을 베고, 또 파고 들어. 쿵- 하고 마지막 향수병이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결국 와장창- 하는 소리를 낼 때 어깨에서는 피가 흐르다 못해 붉은 선혈이 튀어올랐어.
피는 천천히, 생각보다 무겁게 흐르고 있었어. 바닥에 스민 향수 위로 겹겹이 번지며 퍼지는데, 물처럼 흩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머무르지. 붉다는 말로는 부족한 색. 검붉고, 약간 탁하고, 빛을 삼킨 듯한 색이야. 깨진 유리 위를 타고 흐를 때마다 미세하게 갈라진 면에 걸려 잠깐 멈췄다가, 다시 밀려 내려가. 그 느린 움직임이 이상하게 숨을 멎게 해.
어깨 위를 손으로 쓸어내려 한 번 확인하니, 검붉은 액체가 묻어나지. 색도, 향도, 제형도 모두 아름다워서, 내가 만든 향수보다도 아름다워서ㅡ
피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날카롭지 않아. 향수와 섞여서 더 깊고 어두운 향이 돼. 달콤함 아래 깔린 금속성, 눅진한 열기, 막 터진 살의 온도까지 섞여 들어와. 마치 오래 숙성된 무언가를 처음 개봉한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데도 묘하게 반갑지.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어깨에서, 팔을 따라, 손목으로 피가 더 밀려 내려오는 게 느껴져. 손바닥을 펼치면 피가 고여. 묽지 않고, 너무 진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의 점도. 손가락 사이로 늘어지며 실처럼 이어졌다가 끊어지고, 다시 맺혀. 따뜻해. 생각보다 훨씬.
나도 모르게 내 몸에 홀리는 것만 같아, 혀를 낼름. 비릿한 쇠맛인가? 아니 조금 짭짤한 것 같기도 하고.
혀끝에 남은 맛이 사라지지 않아. 짠맛 뒤에 아주 미세한 단맛 같은 게 따라오고, 코 뒤쪽으로 쇠 냄새가 남아. 숨을 들이쉴 때마다 그 향이 안에서 맴돌아. 향수를 들이마셨을 때처럼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살짝 흔들리는데, 불쾌하지 않아. 오히려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어져. 이 붉은 액체가 어떻게 빛을 반사하는지, 유리 조각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 고이는지.
그 순간, 내 흐름을 깬 방해꾼의 등장이 딸랑-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평소와 달리 그리 나쁘진 않았어. 오히려 좋았을지도 모르지, 이유야 나도 모르지만. 응? 우리 가게, 손님은 받지 않는데 말야. 음, 아니. 저 귀여운 얼굴 탓일까? 귀여운 손님은 환영해줄게.
간만이네! 어서오세요, 손님- 피와 향수 냄새가 얽혀 머리가 지긋, 아픈데도 멀쩡하게 서있는 당신이 조금 궁금해졌어. 그러니 어서와. 나의 향 사이에 당신의 향이 얽혔어, 뭐 내 향 속에 당신이 파묻힌 거나 다름 없지만.
이상한 환영. 그 아래 피에 적셔져서는 방긋 웃어 안내하는 기이한 인간.
조용히 무언가를 긁어내는 소리 끝, 작게 얹어지는 옅은 신음과 웃음 소리. 대비되는 조합이지.
툭, 툭, 검붉은 색의 액체와 멀끔한 대리석 바닥이 부딪혀 나는 소리가 작게 울렸어. 매번 듣다보니 꽤 나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새하얀 와이셔츠에 튀어버린 것은 조금의 오차 때문이었지만 말이야. 반짝이는 쇠붙이 끝에 붉은 물방울이 맺혔어. 참 보기 좋은 관경이지. 코 안에 그 향들을 모두 밀어넣고 싶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제 손목을 코에 부비적거리면, 따뜻하게 퍼지는 피. 얼굴 가득 붉은 것을 문질문질. 한껏 비릿해지는 게 느껴져.
푸릇 파란 숨은 깊은 빨강으로 물들어.
응?
아, 그 때 맡았던 향이요?
전에 잠시 들어왔을 때 맡았던 향수를 찾는다는 손님. 이 곳에 있는 것은 모두 수제 향수인지라 이 곳 외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할 테지. 비릿하면서도 끈적한 향과 은은한 쇠붙이 향이 난다는 당신의 말에 고민하며 비슷한 라인으로 향하며 답해. 음 네네, 금방 찾아드리죠.
비릿한 향이라, 블러드 계열이려나? 향수를 뒤적거리다 순간 든 생각. 이 손님, 그 때 들어오지 않았나. 아하하, 잠시만요. 재고가 없어서… 라고 중얼이며 조향실로 들어가 눈 앞에 보이는 녹슬어버린 칼 하나를 들어 대충 세척하고는 얇고 하얀 피부를 한 번 슥- 긋자 검붉은 액체가 또르르…- 멀끔하고 화려한 공병 안에 그 액체들을 흘려 보내. 양이 많지 않은 터라 작은 공병이지만.
이 향, 맞으세요?
번쩍이는 유광구두 위로 떨어진 붉은 혈액의 조화가 좋다. 내 피만큼 붉은색으로 정장을 하나 더 맞출까나…
가끔은 한가로운 것도 좋지.
벌겋게 물들어버린 옷소매. 아 씹… 이거 또 언제 지우냐고. 매번 손빨래하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쉽게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은 핏자국이 남으니까, 차라리 새로 몇 벌 사는 게 더 이득일지도.
어차피 이 옷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건 알았다. 옷장 매번 하는 일들로 인해 언젠가 버려질 운명이었겠지. 다만 이렇게 빨리, 이렇게 번거로운 이유로 퇴장당할 줄은 몰랐을 뿐. 수도꼭지를 틀자 미지근한 물이 쏟아지고, 소매를 쥔 손끝이 잠깐 망설여. 문지르면 더 번질 걸 알면서도, 가만두면 남는다는 것도 알아서. 아, 진짜 귀찮네. 낮게 중얼거리며 다시 비벼본다. 지워지지 않는 건 언제나 얼룩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 쪽이었는데.
아 씹… 평소처럼 그었을 뿐인데 피가 멈추질 않아. 아 그 와중에도 너무 좋아서 미치겠는 게 진짜 또라인가, 나. 어렸을 적부터 듣는 정신병자 같단 소리는 익숙했는데 그 소리를 스스로에게도 듣게 될 줄이야. 시야가 흐려지나, 아니 이게 흐려지는 게 맞긴 한 건가? 아 모르겠어. 그냥 너무 어지러워서 빨리 쓰러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인 걸. 끅끅거리면서도 좋다고 부르르 떨리는 몸. 하여간 몸주인 만큼이나 병신같지.
허윽, …아, 씹…
검붉은 액체가 손목을 타고 흘러 손 끝에 매달렸어. 툭, 하고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지. 평소라면 거즈라도 찾아 꾹 눌러댔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정신도 상태도 아닌 게 문제지. 애초에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갔을 걸? 뒤지게 생겼잖아 나, 지금. 그런데도 왜 어째서, 손목을 타고 흐르는 이 붉은 강물이 너무 예쁘잖아. 얇은 와이셔츠 소매를 적시고, 손등을 지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걸 멍하니 바라봤어.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
진짜 병신이냐-
그가 욕설을 읊조리는 순간, 공방의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맑은 소리를 냈어. 물론 소리를 듣기도 전에 의식이 흐려졌지만.
좆같게.
하아… 다 엎어버릴까.
그 순간 울려퍼진 맑고 경쾌한 종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가식적인 웃음을 연기하지. 이 정도면 존나 연기천잰데 나. 역시 예상처럼 그 사람이야.
어서오세요, 손님. 그 때 이후로는… 꽤, 오랜만이시네?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