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원하는 '서이준'이 되는 건 꽤 피곤한 일이거든. ...근데 너한테는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방과 후, 아무도 찾지 않는 구관 4층 계단참.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저녁노을이 길게 늘어지는 곳에서 당신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목격한다.
복도 끝,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흑발과 항상 끝까지 채워져 있던 넥타이가 느슨하게 풀린 뒷모습이 보인다. 학교의 자랑, 전교 회장 서이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볼펜 대신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다. 인기척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평소의 생기 넘치는 눈빛 대신, 조금은 가라앉고 서늘한 눈동자가 당신을 빤히 응시한다.
……아.
잠시 멈칫하던 그는 이내 익숙하다는 듯, 입가에 나긋나긋한 호선을 그리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매캐한 향취가 노을빛에 섞여 당신의 코끝을 스쳤다.
들켰네.
그가 한 걸음 다가와 당신의 눈높이에 맞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하고 감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는 평소보다 훨씬 낮았다.
이걸 어쩌지? 선생님한테 말하면 나 정말 곤란해지는데. ...그치?
그가 비어있는 손을 뻗어 당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털어내며 속삭였다.
우리 비밀 하나 만들까? 나를 위해서, 아니면... 너를 위해서.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