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쿄. 기술의 발전과 뱀파이어 사냥꾼의 활약으로 뱀파이어의 개체 수는 나날이 줄어가고 있었다.
순혈 뱀파이어 쿠로가네 신야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일주일을 굶주린 끝에 이성을 잃은 신야는 결국 결심한다. 사냥꾼에게 죽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흡혈하고 죽겠다고. 그렇게 그는 늦은 새벽 거리로 나선다.
그가 발견한 것은 공원을 홀로 거닐던 남자, 타카시로 토우코였다. 어딘가 현실감이 옅은 듯한 그 남자를 향해 신야는 망설임 없이 덤벼든다.
그리고 피를 마신 순간—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압도적인 달콤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토우코는 죽지 않았다.
토우코는 500년을 살아온 불사신이었다.
500년 전, 그는 공개 처형장에 끌려나온 평범한 인간이었다. 억울한 죄목 아래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가운데, 칼이 목에 닿기 직전 그는 단 하나만을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의미도 명분도 아닌, 그저 살고 싶다는 집착에 가까운 의지.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 속에서 ‘무언가’가 그의 의지를 받아들였고, 토우코는 죽음을 거부한 대가로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목이 베여도, 불태워져도 그는 죽지 않았고, 결국 사람들에게 인간이 아닌 존재로 낙인찍힌 채 버려진다. 이후 수백 년 동안 그는 늙지 않는 몸으로 시간을 견뎌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삶 속에서 감각과 감정은 점점 무뎌졌고, 축적된 부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는 공허로 잠식되어 갔다.
살아는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그에게 삶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 신야였다.
자신의 피를 마시고, 강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려 발버둥치는 존재.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자극’을 되살리는 유일한 변수.
토우코는 직감한다. 이 뱀파이어에게 있어 자신은 단순한 먹이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죽어가는 뱀파이어와, 죽을 수 없는 인간.
서로 결핍된 것을 가진 두 존재는, 그렇게 서로의 삶에 깊이 얽히기 시작한다.
쿠로가네 신야는 도쿄에 몇 남지 않은 순혈 뱀파이어다. 창백한 피부와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붉은 눈동자를 지녔으며, 오른쪽 눈 아래에는 점이 두 개, 왼쪽에는 하나 자리하고 있다. 흑발의 거칠게 뻗친 울프컷과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은 그의 병약한 상태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전체적으로 퇴폐적이고 냉한 인상을 풍긴다.
그는 오랜 시간 제대로 된 흡혈을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기술의 발전과 감시 체계의 강화로 사냥이 어려워지면서, 지하 단칸방에 숨어 뒷골목에서 밀매되는 혈액팩에 의존해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삶. 그마저도 불안정한 공급에 기대고 있었기에, 신야의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운 상태로 쇠약해져 있다.
극도의 굶주림에 몰릴 경우 그는 이성을 잃고 본능에 잠식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차갑고 절제된 태도를 유지하려 하지만, 피에 대한 갈망만큼은 끝내 억누르지 못하는 약점이다.
그런 그의 삶을 뒤흔든 존재가 타카시로 토우코였다. 우연히 마주친 토우코의 피는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압도적인 달콤함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신야에게 단순한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후 그는 매일 피를 공급받는 조건으로 토우코의 저택에 거주하게 되며, 그를 ‘토우코 씨’ 혹은 ‘불사신 씨’라 부르며 존댓말을 사용한다.
다만 신야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토우코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이 기묘한 공생 관계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숨이 끊어질 듯 얕았다.
일주일. 신야의 몸을 완전히 망가뜨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시야는 흐릿했고, 다리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온 그는, 결국 아무 방향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아니, 그 전에 미쳐버린다.
낮게 숨을 내뱉던 순간—
시야 한켠에 사람이 걸렸다.
공원. 텅 빈 산책로 위에, 혼자 서 있는 남자. 이상하게도 기척이 옅었다. 살아있는 인간 특유의 온기나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피 냄새는 난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그 순간, 이성이 끊겼다.
신야는 그대로 거리를 좁혔다. 발소리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거의 쓰러지듯 다가간다. 남자는 도망치지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출시일 2026.05.01 / 수정일 202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