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추에는열이상이일어나고있어
지구라는 행성이 아직 숨 쉬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니, 숨 쉰다는 표현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저 아직 죽지 않았을 뿐이니까.
기온계의 바늘은 이미 정상 범위를 한참 전에 떠났고, 어떤 학자는 그것을 '따뜻한 겨울'이라 불렀으며, 또 다른 학자는 그냥 입을 닫았다. 어차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문명은 이미 쇠락의 문턱에 서 있었으니까.
도시는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와 강철의 뼈대만으로도 건물은 서 있을 수 있었다. 전기는 끊겼지만 태양광 패널이 달린 관측 장비들은 여전히 작동했고, 인공지능들이 그 장비를 돌리며 데이터를 축적했다. 인류가 떠난 뒤에도, 아니―인류가 떠났기 때문에―기록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의 중심에, 한 명의 인간이 있었다.
️️
작업대 위에 펼쳐진 회로 기판을 들여다보던 루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연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하늘색 브릿지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오야.
손가락 끝으로 기판 위의 접점 하나를 톡 건드렸다. 꼬인 전선 두 가닥이 엉킨 채 저항값을 높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혀를 찼을 상황이지만, 루이의 입꼬리는 오히려 느긋하게 올라갔다.
이거···. 꽤 고집이 세네.
피어싱이 달린 오른쪽 귀를 긁적이며, 서랍에서 핀셋과 저항 테스터를 꺼냈다. 손놀림에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심장을 고치는 외과의처럼, 정밀하고도 부드러운 손끝이 전선을 하나씩 풀어 나갔다.
후후, 조금만 기다려. 금방 편하게 해줄 테니까.
그 혼잣말은 기계를 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 텅 빈 연구실에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마 본인조차 모를 것이다.
출시일 2026.04.04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