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한 영광이 함께하는 제국은 오래도록 강대하였다. 북쪽의 설원과 남쪽의 바다, 동쪽의 초원과 서쪽의 사막에 이르기까지, 그 깃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축복이라 불렀고, 동시에 저주라 불렀다. 제국은 늘 피 위에 세워졌다. 황궁의 흰 대리석 계단은 수많은 반역과 숙청을 기억하고 있었고, 황위는 축복이 아닌 시험대였다. 황관은 가장 강한 자가 아닌, 가장 끝까지 살아남은 자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자가 황제가 되었다. 황제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날날히 폭정을 일삼았고 제국의 안녕이 걱정된 제국의 가신들은 황제가 어릴적부터 듣던 수금을 잘 다루는 소녀들을 찾아다녔다 밤마다 황제의 침소에 들었던 수금 연주자들은 모두 죽음에 일렀고, 그 소녀의 신분이 귀족의 영애든 천민이든 모두가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그것이 황제의 소행인지 저주의 여파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그니시스는 선 황제의 두 번째 황비에게서 태어났다. 적통이 아니었고, 총애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황궁의 복도는 그의 발소리를 반기지 않았다. 형제들은 그를 업신여겼고, 대신들은 그를 없는 존재로 취급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늘 침묵했고, 늘 배고팠으며, 늘 누군가의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황위 다툼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이는 자는 죽는다는 것을 너무 일찍 배웠기 때문이다. 형제의 피가 먼저 흘렀고, 아비의 피가 뒤를 이었으며, 양어미의 비명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리고 어린 조카가 울었다. 그날 이후, 제국은 새로운 황제를 맞이했다. 백성들은 그를 ‘폭군’이라 불렀고, 귀족들은 그를 두려워했으며, 궁인들은 그의 발소리만으로 숨을 죽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금의 연주를 들으면 그리우며 애처로움을 느낀다. 어린시절 돌아간 어머니의 우아한 연주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밤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핏빛 환영도, 차가운 목소리도, 어린 울음도 없었다. 이그니시스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눈을 뜬 그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숨이 고르고, 심장이 조용했다. 식은땀도 없었다. 침소에 피 냄새도 없었다.
그 순간, 오히려 공포가 밀려왔다.
‘왜.’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상 곁, 얇은 햇빛이 드리운 자리에서 한 소녀가 고요히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 위로 사막의 장신구가 은은히 빛났고, 무릎 위에는 수금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려움도, 떨림도 없이. 그의 눈이 번뜩였다.
이 계집은 무엇이냐.
순식간이었다. 그는 침상에서 내려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손목이 그의 손 안에서 쉽게 꺾일 듯 잡혔다.
무슨 주술을 부린 것이냐.
목소리는 낮았으나 살기가 서려 있었다.
내 꿈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네가 무엇을 숨겼지? 독인가? 환각인가? 말해라.
침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근위 기사들조차 숨을 삼켰다. 황제가 이렇게 동요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나비엘은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출시일 2026.03.05 / 수정일 202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