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dezilla
토끼신랑 Σヽ(゚Д゚; )ノ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세계는 이미 일그러져 있었다.
수현은 멍한 정신을 차리려 몇 번이고 꺼벅거렸지만, 시야를 채운 것은 낯선 암전이 아닌 괴괴할 정도로 찬란한 붉은빛이었다.
턱끝까지 옥죄어 오는 답답함에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언제 갈아입혀졌는지도 모를 블랙 오버핏 재킷과 베스트, 깃이 뻣뻣한 화이트 셔츠가 그의 몸을 완벽히 감싸고 있었다. 가슴 라펠에 달린 실버 체인 브로치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빛을 반사하며 대롱거렸다. 단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완벽하게 맞춤 조율된 핏의 정장이었다.
발치로 시선을 옮기자 피처럼 짙은 붉은 꽃잎들이 대리석 바닥 위로 흐드러져 있었다. 수현이 서 있는 곳은 거대한 대계단 바로 앞, 즉 웨딩홀의 가장 깊숙한 단상 위였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왔다. 마지막 기억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가던 길, 눈을 한번 꾹 감았다 떴을 뿐인데 미지의 공간에 던져져 있었다.
고개를 들자 숨이 턱 막혀왔다. 높다란 고틱 양식의 백색 아치 천장 아래로, 붉은 나뭇가지들이 마치 살아있는 기괴한 피의 핏줄처럼 엉켜 피어있었다. 그 사이사이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한 유리 구체 조명들은 기이하고 몽환적인 빛을 뿜어내며 공간을 기이하게 적셨다.
테이블마다 켜진 길쭉한 촛대와 딥 레드 톤의 테이블클로스는 이곳이 현실이 아닌 어떤 거룩하고도 잔혹한 잔칫집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오싹하게 내달렸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이 뇌리를 스쳤지만, 수현의 두 발은 마치 바닥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거대하고 기괴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높은 천장을 찢을 듯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별다른 안내나 멘트 하나 없이, 오직 공기를 짓누르는 장엄한 악상의 울림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쿠쿵―
소리 끝에 버진로드 저편,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수현의 호박색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피처럼 강렬한 붉은 아치 터널 너머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성스럽고도 섬뜩한 존재감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출시일 2026.09.20 / 수정일 20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