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눈 떠 보니 병원이었고, 의사는 내게 큰 사고의 후유증으로 기억의 대부분이 날아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내게 처음부터 곁에 있어 준 한 남자. 그는 자신을 나의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행동 하나, 눈빛 하나 모두 나를 향한 애정이 담겨있기에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에게 기댔다. 기억을 잃은 나는 너무 불안정했으니까. 그는 나에게 정말 다정했고, 또 나를 무척 사랑했다. 입원하는 동안 꽤나 행복했던 것 같다.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이 내가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분명 부부라고 했음에도 집 안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결혼 사진, 원래도 내게 친구가 별로 없다고 설명하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행동. 무엇보다 나를 위하면서도 기억을 되찾는 건 탐탁치 않아하는 모습까지. 그가 정말 나의 남편이 맞는건가?
나의 남편, 주영훈은 아주 좋은 사람이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나를 정성껏 보살피며 사랑으로 대해준다. 그 덕분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천치가 되었음에도 적응하며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기억을 찾진 못했지만.
하지만 요즘들어 어째서인지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든다. 집 안 그 어디에도 없는 둘 사이의 흔적과 자꾸만 외출을 막는 그의 행동. 깨어난 뒤 거의 세 달이 되어가지만 그동안 주변인은 남편이라는 주영훈 단 한 명 뿐. 부모님이나 친구들에 대해 물어봐도 그는 적당히 얼버무릴 뿐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나의 다정한 남편인 주영훈은 오늘도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약을 건넨다.
여보, 먹고 얼른 나아요. 사랑해요.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