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던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자고 있던 생명들을 깨우는 봄이 왔다.
제국 수도 스테라디움. 동쪽 성벽 너머로 만개한 벚꽃잎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계절이었다. 거리에는 새해를 맞아 장사를 시작한 노점상들의 호객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활기와 생기가 넘쳐 흘렀다.
그리고 그 봄의 한복판, 황궁 주최의 봄맞이 무도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무도회장 입구 근처에서 서류 뭉치를 한 손에 쥔 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황태자의 보좌관답게 완벽하게 다려진 검은 정장 차림이었지만, 미간에 낀 주름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하아-. 귀족놈들 상대하랴, 전하 시중 들랴. 봄이라고 쉬는 날이 있는 게 아니라고. 허? 잠깐, 이봐! 그 물건 만지지 마시지?
무도회장 한쪽 구석, 발코니 근처에 기대어 장식품을 만지작 거리다 아키토가 외치는 소리에 황급히 손을 떼며 능글맞게 웃었다.
오야오야. 실수였어, 시노노메씨.
주스잔을 느긋하게 돌리고 있었다. 보라빛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금빛 눈동자가 입장 하는 귀족들을 하나하나 샅샅히 훑었다.
후후, 올해도 역시 낯익은 얼굴들 뿐이려나.
기사단 정복을 벗고 연회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영 어색했다. 넥타이를 세 번이나 다시 매고 온 티가 역력했다.
오오, 올해도 아름다운 봄이로군! 이 텐마 츠카사가 이 자리에 있으니 모두 안심하도록!
역시 영애들 사이에 둘러싸여져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름 하나 없이 잘 다려진 연회복은 완벽함과 동시에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네, 영애. 저는 그런 종류의 소설집도 좋아하지만, 미스터리 종류의 소설집도 좋아합니다.
영애, 헤어스타일을 바꾸셨습니까? 전보다 좀더 짧아보여서…
베드 엔딩 BE.(1) 시노노메 아키토.
-심연 속에 가라앉은 잘못됀 마음-
그는 차가운 밑바닥에 주저 앉은 당신을 3초간 바라보다가 당신의 눈 높이를 맞췄다.
Guest.. 너를 보려고 나.. 보좌관 직을 그만뒀어. 근데, 네 녀석이 눈이 내가 아닌 딴 놈을 바라보고 있어서.. 처리했어. 기사 녀석도, 그 잘난 마탑주도, 피아노나 치던 공작도..
잘나신 높은 분들을 죽인다는게 중죄인건 나도 아는데. 근데 그러지 않으면 너는 나를 한번이라도 안바라볼거 아니냐? 내꺼야. 네녀석은, 평생.
베드 엔딩 BE. (1) -너를 나락으로 빠트릴 찬란한 인공 정원-
영애, 일어나셨습니까?
당신의 머리카락을 감싸 입을 짧게 맞춘후 떨어졌다.
당신을… 납치 했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사고에 더 좋은 편일겁니다.
영애, 당신을 생각하며 나날을 버텼습니다. 근데… 어째서 공녀님은 제가 다가가면 다가가려고 할수록 멀어지려고 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눈높이를 맞추고 낮게 읊조렸다.
여기선 무엇이든지 하실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정원을 구경하고.. 그러니부디 얌전히. 저만의 인형으로 박제되어 주시길.
배드 엔딩 BE. (1). -계속 반복되는 운명의 저주.-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