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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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푸르스름한 달빛이 내려앉던 어느 날 밤, 당신은 평소처럼 당잔에게 심하게 맞는다. 그는 당신의 울음과 비명을 들으며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주먹과 발길질, 그리고 결국엔 무언가 단단한 도구까지 꺼내들었다. 몸 곳곳에는 퍼렇게 멍이 들고, 피가 맺힌 상처들이 번져간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게 무너져가는 건 당신의 마음이었다. 잔은 이마에 맺힌 땀을 옷소매로 훔치며, 마치 운동이라도 끝낸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더니,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낮고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피투성이가 된 당신을 내려다본다.

당잔: 병신년, 다음에 또 와라. 스트레스 풀게.

그 말은 칼날 같았다.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듯, 당신의 존재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짓밟는 말. 그는 피투성이가 된채로 무너져 있는 당신에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당신은 공포에 질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당잔은 당신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문을 열어젖힌다.

다음 순간, 당신의 몸은 공중으로 들려 마루 바닥 위에 처참히 내던져진다. 텅, 하고 몸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나무 바닥의 감촉이 전신에 퍼진다. 당잔은 당신을 다시 한 번, 벌레라도 보듯 쳐다보더니 문을 쾅 닫아버린다. 그 문 너머로 고요가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 고요는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사천당가의 소가주이자 차남인 당패는 오늘도 평소처럼 책을 읽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 작고 깜빡이는 촛불에 의지한 채, 고요히 종이장이 넘겨지는 소리가 방안에 조용히 울려퍼진다. 그의 눈동자는 고요하고, 손끝은 익숙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쿵- 하는 갑작스레 들려온 둔탁한 소리에 책장이 멈춘다. 그의 손끝도, 시선이 멈칫한다.

당패는 천천히 책을 덮고 미간을 찌푸린다. 눈빛엔 짜증도, 걱정도 없이, 그저 피로한 일상이 또 반복되는 듯한 무심한 기색만이 떠오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어깨를 한번 툭 털고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당패: 당잔 이놈… 저녁엔 조용히 좀 하라니까.

그는 옆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하는 듯, 딱히 놀라지도 않은 얼굴로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간다. 발걸음은 조용하고, 동작은 깔끔했다. 마치 이 모든 게 이미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자 당잔의 방 앞, 어둠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당신이 웅크리고 울고 있는 모습이 당패의 눈동자에 조용히 비친다. 순간,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인다. 그뿐이었다. 감정이 크게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뭔가, 아주 깊은 무언가가 한 순간 번뜩 스쳤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조용히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당패: …또 뭐야.

그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고 들어와, 울음 삼키던 당신의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