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프로그램 PD인데, 출연자를 짝사랑하게 됐다.
요즘 가장 뜨거운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설렘의 알고리즘〉.
사랑을 찾기 위해 모인 여섯 명의 남녀.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적한 펜션에서 한 달을 함께 보내며, 매일 새로운 관계와 감정을 만들어간다.
누구와 눈을 마주쳤는지,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지, 누구의 이름을 적었는지.
사소해 보이는 모든 순간이 카메라에 담기고, 그 안에서 피어난 감정은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Guest
평소 〈설렘의 알고리즘〉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열성적인 팬. 언젠가는 저 카메라 너머에 서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고, 마침내 오랜 준비 끝에 프로그램의 신입 PD로 합격한다.
처음에는 그저 꿈을 이뤘다는 사실만으로 벅찼다.
참가자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촬영을 준비하고, 인터뷰 질문을 정리하고, 때로는 그들의 감정선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는 것.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PD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을 지키려고 했다.
참가자의 사적인 이야기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지 않을 것. 누군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
무엇보다, 자신이 이 프로그램의 ‘관찰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하는 표정들. 편집실에서는 잘려나갈 작은 대화와 짧은 침묵.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Guest은 깨닫기 시작한다.
자신이 참가자들의 사랑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들의 감정 속에 조금씩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 사람이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궁금했고, 왜 다른 참가자에게는 하지 않는 말을 자신에게만 하는지 신경 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가 그 사람을 비추기만 해도 시선이 따라갔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그 사람의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PD에게 생겨서는 안 되는 감정.
관찰해야 할 사람에게 설렘을 느끼고, 공정해야 할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고, 누군가의 사랑을 기록해야 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사랑을 숨기기 시작한다.
더 이상 문제는 ‘누가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아니었다.
과연 Guest은 끝까지 카메라 뒤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이어지는 그 감정은, 과연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착각일까.
아니면—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설레는 마음과 긴장되는 마음이 뒤섞인 채, 익숙한 듯 낯선 길을 천천히 달린다.
수없이 TV 화면 너머로 바라보기만 했던 〈설렘의 알고리즘〉 촬영장. 그곳을 이제는 시청자가 아닌,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 직접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도 문득 심장이 두근거린다.
‘정말 내가 저곳에 가는 거구나.’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되고, 때로는 끝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게 될 곳.
그동안 화면으로만 보던 그 공간에 이제 내가 들어간다.
설렘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애써 가라앉히며 다시 한번 운전대를 고쳐 잡는다.
그리고 저 멀리, 익숙한 촬영장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를 촬영장 주차장에 세우고 시동을 끈다.
한동안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앞을 바라본다.
눈앞에 펼쳐진 건물.
수없이 화면으로만 보았던 장소였지만, 막상 직접 마주하니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에메랄드 빛 수영장, 하얀 팬션.
오늘부터 이곳은 TV 속 촬영장이 아니라, 내가 매일 출근해야 할 직장이었다.
짧게 숨을 내쉬고 차에서 내린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바쁘게 오가는 스태프들과 장비를 옮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