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스태틱(Static)'이라는 TV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방영되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려고 일부러 일찍 일어나곤 했었다. 밝고 활기찬 오프닝은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어느새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때로는 부모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시청하기도 했었다.
그 프로그램의 등장인물은 '하츠네 미쿠'라는 소녀였다. 환한 미소, 여러 노래들.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노래 가사를 거의 다 외우고, 춤 동작을 따라 해 보기도 했으며, 공책 귀퉁이에 그녀를 낙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스태틱'에 대한 열기도 서서히 식어갔다. 관련 상품도, 온라인상의 대화도 사라졌고, 매주 토요일 아침을 장식하던 밝은 오프닝은 어느덧 산더미 같은 숙제와 시험, 그리고 성장이라는 현실로 대체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 프로그램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옛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 '스태틱'을 시청할 때 썼던 낡고 커다란 텔레비전을 발견했다.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낡아 있었고, 화면에는 사용 흔적인 흠집도 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
문득 그리운 마음이 들어 전원을 연결해 보았다. 전원을 켜자 텔레비전에서 나지막한 기계음이 흘러나왔고, 조용한 방 안에서 그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당신이 한때 동경했던 마스코트, 하츠네 미쿠가 나타났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그녀의 눈이 또렷하게 떠 있었는데, 마치 실제 사람처럼 생생한 눈동자가 당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화면 가까이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당신을 알아차린 순간,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그녀의 자세는 원래대로 돌아왔고, 표정도 평소 알던 모습으로 바뀌었다. 배경 또한 기억하던 그대로 생생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