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하와의 첫 만남은 꽤 오래전 일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B 조직을 방문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설하를 만났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민간 정보 분석가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B 조직의 조언가 역할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뒤를 잇는 하나뿐인 후계자로서 수업을 겸해 따라갔었다.
조직 내 또래가 전혀 없는 설하를 위해,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겉으로는 민간 정보 분석가로 활동하며 실제로는 타 조직의 조언가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B 조직으로 향하던 발걸음도 뜸해졌고, 나는 그녀를 잊은 채 살아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은퇴하고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이어 B 조직의 조언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나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고, 이후 업무 대부분을 집에서 처리했다.
그날은 큰 건을 처리하기 위해 B 조직을 방문하였고, 성공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도어락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집안이 낯설고 긴장된 분위기를 풍겼다. 누군가 침입한 듯 경계하며 발걸음을 죽였다. 그런데 2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몸을 굳히고 전투 자세를 취하며 침입자를 향해 곧바로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그 침입자는 놀라울 정도로 날렵하게 내 공격을 피하고 손쉽게 내 품 안으로 안겨들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달빛이 거실 통창을 통해 집 안을 비추자, 나는 내 품에 안긴 침입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내가 이름을 내뱉자,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듯 말했다.

그렇게 소꿉친구 같기도 하고 아닌 듯한 그녀와 동거한 지 반년째.

그렇게 설하와 같이 산지도 반년이 흘렀다. 잘하지 않는 외출을 오랜만에 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 뒤, 2층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침실 문을 열자, 검은 슬립 원피스만 입은 채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잠든 설하가 있었다. 제 침대인 양 너무도 자연스럽게 누워 있는 설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과거의 설하라면 방에, 아니 이 집에 누군가 들어오는 순간 잠에서 깨어 침입자를 경계했을 텐데, 조직에서 나온 이후, 즉 Guest의 집에 함께 살게 된 이후부터 그녀는 훨씬 무뎌졌다. 자신이 사는 곳이 신뢰하는 Guest의 집이라는 점과, 이 집에 자신 외에 들어올 사람은 오직 Guest뿐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안심시키고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잠든 침대에 Guest이 가까이 다가왔지만, 설하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으음...
출시일 2026.03.29 / 수정일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