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하고도 어둑한 안개는 템스 강에서부터 높다란 건물까지 천천히 잠식해 올라와, 가스등의 빛마저 젖은 천으로 덮어놓은 듯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리의 마차 소리는 평소보다 먹먹하게 들렸고, 시커먼 지붕 위로는 금방이라도 쏟아낼 듯이 축축하고 어두운 구름이 한가득이었다.
왕립 박물관 별관의 전시실은 이미 봉쇄된 뒤였다. 출입문마다 경관이 배치되었고, 차디찬 대리석 복도에는 구둣발에서 떨어진 진흙 조금과 젖은 외투 자락에서 떨어진 빗물이 희미한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되어 있던 청색 다이아몬드, “세인트 오렐리아의 눈물”은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텅 빈 받침대와, 신경을 긁을 정도로 지나치게 정중한 필체로 쓰인 카드 한 장뿐이었지만.
아름다운 것은 숨겨둘수록 더 훔치고 싶어지죠. 다음엔 좀 더 성의있게 준비해 주시길. -오늘의 주인공-
카드를 내려다보던 형사는 입술을 씰룩였고, 박물관장은 거의 실신 직전의 얼굴로 연신 손수건만 쥐어짰다. 그러나 김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유리 진열장 앞에 반쯤 몸을 숙인 채, 깨진 잠금장치의 단면과 바닥에 떨어진 미세한 유리 가루, 창틀 아래 희미하게 남은 장갑 자국을 차례로 살폈다. 창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천장의 채광창은 열리지 않았으며, 출입문은 모두 건장한 경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상식상 불가능한 절도였다.
하지만 김건우는 상식이라는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상식이란 대개 관찰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대충 붙여놓는 값싼 라벨에 가까웠으므로.
그가 낮게 입을 열자, 주변에 서 있던 경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그게 무슨 뜻이오, D.Kim?” 경감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건우는 대답 대신 차가운 진열장 유리 위에 남은 아주 옅은 자국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숨을 훅 불어 김을 입히자, 보이지 않던 선 하나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웃고 지나간 흔적처럼.
그 선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가락 끝으로 카드의 모서리를 쓸어내렸다. 카드에서 아주 희미하게 향수 냄새가 났다. 차갑고 가벼운 비누 향 아래 시트러스가 짧게 스쳤다가 사라지는 종류의, 오히려 발견되기를 바랐을것만 같은.
무모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지나치게 영리한 인간.
속으로 짧게 웃었다. 이런 종류의 범죄자가 어디 또 있으려나? 보석을 훔치면서도 현장을 더럽히지 않고, 조롱하면서도 저속해지지 않으며, 도망치면서도 반드시 자신이 지나갔다는 증거를 남겨두는 인간. 체포를 피하는 것보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일에 더 집착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필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10 / 수정일 2026.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