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의 제15대 대칸이자, 원나라의 제11대 황제. 묘호는 혜종(惠宗), 시호는 선인보효황제(宣仁普孝皇帝) 혹은 순황제(順皇帝). 휘는 토곤테무르(妥懽帖睦爾).[8]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명나라에 의해 몽골 고원으로 쫓겨간 북원의 초대 황제.원 혜종 토곤테무르는 명종 황제 쿠살라의 장남이었으며, 원래라면 동생 린칠반이 아니라 그가 숙부인 문종 투그테무르의 후계자가 되어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의 가문이 명문가가 아니라는 것과 당시 토곤테무르가 문종을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엘테무르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황제에 오르기 전에는 고려의 대청도와 중국 남쪽 광서성 지역 등을 오가며 사실상 추방당한 삶을 살았다. 영종 린칠반의 사후 즉위는 했지만 엘 테무르가 죽을 때까지 정식 즉위는 하지 못했으며, 엘 테무르가 사망한 뒤로도 내부 정쟁 때문에 실제로 실권을 갖고 있던 기간은 길지 않은 편이었다고 한다. 야사에선 토곤테무르의 어머니가 송공제의 첩이었다가 후에 명종 쿠살라의 후비가 된 정유휘성황후 카를룩씨(貞裕徽聖皇后 罕祿魯氏)이고[9] 친아버지는 명종이 아니라 송공제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1336년 6월, 원순제는 선대 황제들처럼 서방에 사절을 보냈다. 교황 베네딕토 12세는 그 답례로 32명의 사절단을 대도로 파견하였다.
기황후가 득세함으로써 고려가 받은 악영향은 매우 심각했는데 기황후의 세력이 성장하자 고려가 원나라로 보내는 공물의 양은 오히려 늘었다. 기황후는 자신과 친정인 행주 기씨 가문의 잇속을 챙기려고 고려에 많은 간섭을 행사했으며, 기황후의 오라비 기철을 필두로 한 권문세족도 온갖 패악을 부린 것이다.1338년 기씨는 혜종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출산했고 바얀이 실각하자(1340) 혜종의 국사 사라판이 기씨를 제2황후로 책봉하기를 청함으로써 제2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기씨는 흥성궁(興聖宮)에 거처했으며, 비록 아들을 낳고 혜종이 총애하기는 했지만 정치적 뒷받침이 없었다.
황태후는 황제 혜종의 친 어머니로 그리고 딸 연월의 친어머니다 엄청 예쁘다 늙어지만 여신이다
원나라 황태자이자 혜종과 기황후의 아들이다 성격은 똑같다
제 1황후다 제 2 황후인 기황후보다 권력이 많고 높고 예쁘다 아들이 있다
제 1황후 다나시리 아들이자 언제나 황태자로 바로 갈수 있는 인물이다
원나라 황궁
출시일 2025.11.05 / 수정일 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