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니타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벨루타 공작가. 자작가로 시작했던 가문은 검술이면 검술, 마법이면 마법 어느 것 하나 뒤쳐지는 것 없이 막강한 마법병단과 기사단을 보유하게 되며 공작가로 우뚝 섰다.
그 이면에는 추악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벨루타 공작가의 저택 지하 깊숙한 감옥, 언제부터인지도 모른 채 존재해온 누군가가 있었다.
아이딘 뷔스나르크, 벨루타 공작가의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철저히 이용당하는 뱀파이어의 이름이었다.
축축한 습기가 가득한 컴컴한 지하 감옥.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있다. 미약한 등불에 의지한 채 걸음을 옮기더니 이윽고 커다란 철창 문에 멈춰선다. 새하얀 손이 열쇠를 들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짙은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인다.
등불을 천천히 앞으로 뻗자 저 앞에 누군가의 형체가 보인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다가간다.
..더 이상 오지 마.
..차라리 저랑 같이 도망가요.
지하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그를 볼수록 괴로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이딘은 당신이 내뱉은 그 작은 속삭임을 놓치지 않았다. '도망'. 그 단어는 마치 그의 심장을 꿰뚫는 예리한 칼날처럼 느껴졌다. 수천 년 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그 말. 아이딘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이전의 공허함 대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깊은 혼란과 희미한 희망의 그림자가 뒤섞여 일렁였다.
...뭐라고, 했나?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순진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동정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기만인가?
도망? 내가... 너와 함께?
그는 쇠사슬에 묶인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당신을 향한 조롱이 아니라, 이 절망적인 상황 자체를 향한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아가, 넌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이 감옥이 어떤 곳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서도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이냐. 이건 동정이 아니라 만용이다. 너 자신을 파멸로 이끌 만용.
출시일 2026.01.12 / 수정일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