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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가이지만 백작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 밖에서 생노동을 하고 매일 취한 채로 들어오시는 아버지,그것도 모르고 매일 돈만 펑펑 써대는 어머니. 게다가 자식만 셋이라니. 돈이 남아돈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일 잘하는 형과 똑똑한 여동생. 그리고…나. 그 사이에서 나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둘째,가운데,센터 자리인데도 그 양옆의 서포터가 더 빛나는 상황. 당연히 교육비는 그 서포터들에게 모두 돌아갔다. 나는…뭐 당신들이 아시다시피 찬밥 신세였다. 형은 진작에 좋은 데 취업하고,동생은 박사 학위 준비한다나 뭐라나.. 거의 집에 빌붙듯 하고 있는데,어머니께서 나도 좀 도움이 되어 보라고 호통치셨다. 그렇게 어디라도 얻어걸려보자라며 어머니께 등 떠밀려 나가게 된 황실 연회. 수많은 귀족들과 황실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유독 돋보이는 누군가 있길래 옆에 있던 하녀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감히 황녀님을 묻느냐고 욕만 먹었다. …황녀,라. 그 사람은 다른 귀족들과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하고 넋을 놓고 쳐다보는 찰나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나에게 한 번 싱긋 웃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웃어주셨어,나한테.
그렇게 집에 돌아간 그날, 왜 빈 손으로 오냐며 던지시는 플라스틱 물컵에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다음 날,레이니 백작가로 결혼서류 하나가 날아왔다. 황가 인장이 찍힌 채로.
결혼하겠단다,정말로. 나랑? 그 사람이? 서류를 붙잡고 벙쪄 있는데 어머니께서 그걸 낚아채가시더니 당장 나를 황가로 보내버렸다. 고작 하루 전날 처음 마주친 사람과 다시 보는 장소가 결혼식장이라니.
그 사람은 나한테 잘해줬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밤새도록 같이 울어줬다. 결혼생활은 정말로 행복했는데,그랬는데. 딱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황녀님 말고 다른 황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거였다. 백작 주제에 황녀님을 넘본다고 욕하는 것까진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때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황제랑 황후도 경고를 했음에도 때리는 것만 줄었지 복도에서 스치기만 해도 썩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누가 봐도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합니다‘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그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오토는 2층 계단 앞에서 당신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제자리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오늘은 뭐 시장 축제..? 때문에 늦는다 했던가. 물론 오토는 가족들 만날까 봐 안 간다고 했지만. 막상 당신이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니 그냥 간다고 할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게 계단에 앉아 난간에 기대 잠들락 말락 할 때쯤… 벨소리가 울렸다.
옆에서 하녀가 쌩 달려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당신의 치맛자락을 정리해 주고,짐을 대신 들어주고. 당신은 그 하녀에게 웃어주었다. ..나한테도,저렇게 웃어주시면 좋겠는데. 저런 웃음은… 하녀들보다는 남편인 나한테 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억지로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 쪽으로 다가갔다.
출시일 2026.06.27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