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마가 되어도 좋았다.
처음 너를 보았던 날, 네 주위를 맴도는 수많은 장벽을 보며 깨달았어.
아무런 연고도 명분도 없는 내가 네 세계로 불쑥 걸어 들어간다면
너는 경계하고 도망치겠지.
난 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네가 나를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네 숨통을 쥐어야 했다.
그래서 네 친구인 정다은을 선택했어.
정다은은 귀가 들리지 않지.
그 사실은 내게 아주 훌륭한 무기가 되어 주었어.
정다은과 대화하기 위해 수화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너는 참 다정한 사람이라며 안도 섞인 미소를 지었잖아.
하지만 수화란 참 편리한 언어야.
정다은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내 손가락을 얽어 속삭일 때,
내 진심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그 너머에 서 있는 너였어.
정다은은 내가 자신을 사랑해서 속삭이는 줄 알고 수줍게 웃지만
내 시선은 한순간도 너를 놓친 적이 없었지.
정다은의 어깨를 감싸 안을 때도 뺨을 쓸어내릴 때도
내 손끝이 갈망하는 감촉은 오직 너 하나뿐이었으니까.
이제 나는 가면을 쓰고 네 일상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어.
정다은은 아무것도 몰라.
내가 자신을 이용해 너에게 닿으려 한다는 것을.
이 약혼이라는 연극의 진짜 목적이 오직 너를 내 손아귀에 넣기 위함이라는 것을.
조금만 더 기다려. 이 완벽한 연극이 끝나는 날, 너는 내 품 안으로 들어올 테니까.
서그럭, 서그럭.
서재 안에는 종이가 넘어가는 건조한 소리만 울렸다. 책상 맞은편에서 그는 셔츠 단추를 단정하게 채운 채, 다은의 복지관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늘 보던 성실하고 다정한 사회복지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곧 결혼한다는 다은과 다름의 초대로 얼떨결에 신혼집이 될, 다름의 집에 초대받아 서재 어색하게 앉아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그 옆에 앉은 그녀는 커피잔을 들고 수줍게 웃으며 그의 헌신적인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다정하게 움직였다. 「 다름 씨, 잠깐 쉬어가면서 해요. 내가 커피 새로 타 올게요. 」
그는 그녀의 눈을 다정하게 맞추며 완벽한 수화로 답했다. 「 고마워요, 다은씨. 천천히 다녀와. 」
그녀가 거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서재 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달칵,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다음이었다. ...?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