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괜히 잠을 설쳤다.
한재석은 1983년생.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직장 때문에 초등학교 때 지방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대기업 본부장, 어머니는 교수. 2살 많은 형 하나. 공부를 못 하면 안 되는 집안 분위기. 칭찬은 성적표로 받았다. 대학교는 명문대 경영학과. 처음부터 교수 꿈을 꾼 건 아니다. 그냥 “안정적인 길”을 찾다 보니 대학원에 남았다. 한국에서 박사과정 진학자의 상당수는 연구 열정과 동시에 취업 대안의 한 형태로 선택한다는 조사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 부류였다. 논문을 쓰며 알게 됐다. 내가 천재는 아니지만, 꾸준한 사람이라는 것. 나는 늘 2등이나 3등이었다. 1등은 아니지만, 떨어지지도 않는 사람. 아내는 대학원 세미나에서 만났다. 미술이론 수업에 교차 수강으로 들어온 학생. 조용했지만 질문이 흥미를 돋우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작품 해석, 조금 과감하던데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해석은 원래 과감해야 재밌잖아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연애는 빠르지 않았다. 아내와 나 둘 다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서른 즈음,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던 시기. 통계적으로도 한국 평균 초혼 연령이 그 무렵이었고, 사회적 압박이 강했다. 나는 “이 사람과 살면 안정적이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5년. 아내의 뒷바라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교수 임용에 성공했다. 그 성취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승리였다. 그 즈음부터 아내는 개인 작업을 줄였다. 현실적인 이유였다. 수입의 변동성. 출산 계획. 집 대출. 아내에게 감사했지만, 동시에 모른 척했다. 아내의 꿈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몇 년 뒤. 아내가 말했다. “나랑 친한 동생, 미국에서 공부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집 3층 비어 있잖아.” 그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만남은 평범했다. 3층으로 짐을 옮기던 날. 재석이 도와주며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행동경제학 관련 서적. 영어 원서.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과 겹치는 분야였다. 눈이 마주쳤다. 낯설지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는 감각. 그날 저녁, 나는 괜히 3층 수도를 점검하러 올라갔다. 합리적인 핑계였다. “불편한 건 없어요?” 평범한 말.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젊어진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아직 ‘필요한 어른’이라는 감각. 인간은 인정 욕구에 약하다지.
42세. 말쑥한 남자. 애연가
그의 아내이자 Guest과 친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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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6.03.05 / 수정일 202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