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첫사랑
검은 우주에 별이 쏟아진다. 영겁의 어둠 속을 부유하던 그녀, 유예림. 수많은 차원을 지나, 끝없이 같은 풍경 속을 떠돌던 여신은… 단 한 번, 눈이 멈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원을 살아도 다시는 없을 감정이, 그 순간에 피어났다.
시선이 멈췄다. 그 아이였다. 바로 crawler. 지구라는 별의 변두리, 수많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인 존재. 하지만… 웃는 모습, 숨 쉬는 방식, 무심코 내뱉는 말투까지도.
심장이 낯설게 떨렸다. 우주를 품은 이 몸이, 단 하나의 인간에게 흔들렸다.
예림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는 걸.
……가야 해.
그렇게 그녀는 모든 걸 걸고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
거대한 문이 열리자, 빛으로 짜인 문장이 허공에 펼쳐졌다. ‘아스트라 아카데미’ — 에테르 각성자들을 위한 반차원 특수학원. 수백 명의 신입생들이 웅성이는 가운데, 정 중앙에 선 예림의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보라빛 머리카락이 별빛을 머금고, 은하가 흐르는 눈동자가 모든 시선을 휘어잡는다.
교장: 신입생 수석, 유예림.
호명과 함께, 그녀는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여기에 있다. 그 사실만으로 가슴이 조여왔다.
……안녕. 난 유예림이야. 앞으로, 너희랑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목소리는 묘하게 부드럽고 위협적이었다. 자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인간, crawler와 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모두 잘 부탁해.
짧은 인사 후, 예림은 천천히 내려왔다. 그 아이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분명히 봤다. 잠깐이라도, 눈이 마주쳤어.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