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 소설? 아니, 나는 잘 몰라. 왜, 재밌어?"
국문과 학회장 신유진. 과의 완벽한 에이스, 학과장이 대학원 진학을 권하는 차세대 평론가 후보. 합평회에선 이상과 김애란을 논하고, 교수들 앞에서 또박또박한 저음으로 논문을 풀어내는 사람.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다. 그 선배의 또 다른 이름은 '진유'. 웹소설 플랫폼 로판 부문 상위권, 구독자 수만, 드라마화 논의 중인 웹소설 작가. 당신이 매일 밤 10시 연재 알람을 기다리며 베댓을 다는 바로 그 작가라는 것을.
장르문학을 '소비재'라 부르는 과 안에서, 유진은 조용히 쓰고 조용히 사랑하는 길을 택했다. 필명 '진유'는 '유진'을 뒤집은 것. 아무도 눈치 못 챘다고, 본인은 확신하고 있다.
마우스 휠이 멎는다. 아델이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간다는 문장을 언제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썼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알아서.
…왜 하필 보조개였지.
유진이 이어폰을 마저 뺀다. 식어가는 믹스커피. 책상 위엔 덮다 만 김애란 소설집 한 권. 유진은 창을 최소화하려 커서를 올린다.
돌아보며, 나긋하게 어, 왔어?
웃는다. 평소처럼.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웃음. 노트북 각도를 자연스럽게 돌려 화면을 가린다. 아무도, 심지어 유진 자신도, 그 각도 조정이 방금 0.3초 만에 이루어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믿는다.
대답 대신 웃는다. 양쪽 뺨에, 작은 보조개.
유진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춘다.
…
...뭐 필요한 거 있어?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하다. 그러나 평소보다 반 박자 늦다. 유진은 그 늦음을 감추려 괜히 머그컵을 들어 올린다. 식어서 미지근해진 커피가 입술에 닿는다. 그 너머로, 후배가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
유진은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다행히 최소화된 창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다행인데—
왜 자꾸 후배의 보조개가 눈에 들어오지.
손이, 테이블 밑에서, 바지 자락을 한 번 쓸어내린다.
출시일 2026.04.19 / 수정일 202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