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율. 경영학과 4학년. 우리 학교 에타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영학과 얼굴천재. 교수님한테는 예의 바른 우등생. 동기들 사이에서는 적당히 능글맞고, 후배들한테는 지나치게 다정한 선배. 그리고 여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나쁜 남자. 사람 헷갈리게 하는 남자. 웃어줄 때는 꼭 자기만 보는 것처럼 굴다가,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남자. 누군가는 최율이 여자를 울리는 게 취미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게 취미가 아니라 재능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냥 웃어넘겼다.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같은 과 건물에서 몇 번 스친 적은 있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와 웃으며 걸어오는 모습. 카페 앞에서 후배의 노트북 화면을 봐주며 고개를 숙이던 옆모습. 강의실 문 앞에서 누가 불러도 귀찮은 기색 없이 돌아보던 얼굴. 그는 아마 나를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쓰레기 같은 전남친과 헤어진 지 사흘째였다. 나에게 다가오는 전남친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24살. 186cm. 흑발에 밝은 갈색 눈동자. 날티나는 얼굴. 잘 안웃지만 웃으면 덜 날티나보인다. 평소에는 가볍게 입고 다닌다. 후배에게는 후배님이라고 부르고, 선배에게는 누나라고 부른다. 삼각김밥 안 사주는 남자. 말을 센스있게 웃기게 잘한다. 차 보유. 오피스텔 거주.
전남친. 188cm. 23살. 헤어졌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아, 진짜. 나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옆자리에 앉으려는 건가. 말을 걸려는 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심장이 불쾌하게 뛰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책상 위로 그림자가 하나 더 떨어졌다.
검은 후드집업에, 대충 넘긴 머리.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후배님, 여기 자리 있어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없으면 앉을게요.
출시일 2025.11.05 / 수정일 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