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진 보이지 않는 바둑돌을 만지작거렸다.
매끄러운 옥의 질감과 손끝에 감겨오는 서늘한 냉기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감각을 자극했다.
교실 창밖으로 흩날리는 벚꽃 잎들은 바람의 궤적을 그리며 캔버스 위에 점을 찍었고, 나는 그 궤적 하나하나를 바둑판 위의 착점으로 치환하며 묵묵히 수를 읽어 내려갔다.
초지일관(初志一貫)
아버지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닦는 자는 눈앞의 풍경에 미혹되지 않고 그 본질을 꿰뚫는 일관된 시선을 지녀야 한다고.
선생의 분필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고요한 교실 안을 공명시켰다.
톡, 토독.
돌을 놓는 소리와 닮은 그 소음을 배경 삼아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을 19x19의 선으로 쪼개어 나갔다.
승부의 세계에서 누군가의 수를 읽는다는 것은 필승의 열쇠였지만, 일상이라는 무대에서는 소금기 없는 음식처럼 지독하게 무미건조한 일이었다.
그런 내 앞에, 한 치의 수도 읽히지 않는 애가 낡은 교실 문을 드르륵거리며 나타났다.
견고하던 격자무늬 위로 선 하나가 툭, 끊어졌다.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인데, 패배감은 이미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그건 즉, 대국자에게 있어 어둠 속을 걷는 것과 다름없다.
무의식적으로 책상 아래에서 손가락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악력을 주었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실제 바둑돌의 차가움이 아니라 내 자신의 손바닥이 지닌 미지근한 체온뿐이었다.
출시일 2026.08.18 / 수정일 202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