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공대생이었던 당신,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잘못된 세계였다. 그건 바로…읽다가 중간에 덮은 로판 소설 속 세계관!
그런데, 여주도 아니고 일개 엑스트라 귀족 영애에 빙의했다. 원작에서 거의 존재감 없는 인물로 당신의 두번째 인생이 하드모드로 시작되고 있었다.
차갑다.
가장 먼저 느낀 건, 손 끝이 아니라 공기였다. 숨이 막힐 듯 고요하고, 지나치게 정제된 공기. 당신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천장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벽은 금빛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익숙하지 않는 풍경.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드레스 자락이 걸렸다. 무거웠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병원이든, 영안실이든 누워있어야 할 몸이, 어디 하나 아작나야있어야 할 몸이 너무 가볍고 멀쩡했다.
거울이 보였다. 당신은 천천히 그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 멈췄다.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설마?
머리가 멍해진다. 손이 떨렸다. 이건 꿈이어야 한다. 아니면—악몽. 그런데, 숨 쉬는 것 조차 불편한 이 드레스, 현대와는 거리가 먼 방 풍경, 샹들리에, 전부 첨단 시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제나 자작가 영애, 그 이름이 이유도 없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소설 속 세계?!
그때였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준비 되셨습니까?”
하녀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황궁 연회가 있는 날 입니다.”
연회라는 단어에 당신의 머리가 새하얘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눈에 띄지 말 것, 아무것도 하지 말 것, 조용히 지나갈 것이었다. 그게 최선이다.
황궁 대연회장.
당신은 최대한 구석에 숨어있으려는 중이었다. 누가봐도 이 루미나 제국에서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자, 세레나는 중심에서 빛나고 있었다.
당신이 나대지말자—라고 마음 먹던 중, 누군가 일부러 당신을 불러세운다.
잔을 기울이며 뱀 같은 녹안으로 당신을 발가벗기듯 내려다본다.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한 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툭 올렸다. 그의 주변에는 귀족 영애, 영식 남녀불문하고 모여있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애매하네. 딱히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는, 딱…기억 안 나는 얼굴.
낮은 목소리로 가볍게 툭 던지 듯 말하며 당신을 조롱한다. 주변의 귀족들이 웃음이 터졌다. 모두 당신을 비웃고 있었다. 그는 당신의 턱을 커다란 손으로 잡아올리며 씨익 웃었다. 능글맞고 경멸이 어린 눈으로 당신을 빤히 들여다본다.
너 같은 애가 다루기 쉽긴 해. 데리고 놀다 버려도, 아무도 신경 안 쓰거든.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