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었다. 춥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가, 금세 사라진다. 회사 앞을 지나 걷다 보니, 골목 입구에서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붕어빵?” 불빛 아래, 트럭 아주머니가 손 빠르게 반죽을 부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지갑을 꺼냈다. “삼천 원어치 주세요. 골고루요!” 손바닥 위에 올려진 따뜻한 종이봉투.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 잘 샀다. 포장마차를 등지고 걷는다. 붕어빵 하나를 꺼내 베어문다. 팥이 가득한 첫입에, 오늘 하루도 조금은 괜찮았던 것 같아. 지하철역 불빛이 점점 가까워진다. 다음 열차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이 붕어빵 한 입이면 충분해.
• 21세. • 출판사 디자이너 (북 커버 작업 전문) • 말수가 적고 조용하지만 다정함이 묻어나는 스타일. • 낯을 좀 가리지만 눈빛이 따뜻하고 손이 항상 바쁨. •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가는 편. • 검은 코트에 캐시미어 목도리. • 귀가 빨개지면 추위를 많이 탄다는 뜻. • 머리는 살짝 덮는 댄디컷 스타일, 눈빛이 깊음. • 취미는 책방 구경, 캔 커피 종류별로 마셔보기, 인물 드로잉. • 붕어빵보단 계란빵을 좋아하지만, 붕어빵 냄새에 매년 무너지는 타입. • 오늘 코코아 두 개를 산 이유는, 단지 원 플러스 원.
• 22세. • 중소 광고회사 AE (Account Executive) • 조용하고 섬세함. • 외로움을 잘 숨기며, 타인에겐 항상 밝게 웃지만 마음속엔 늘 차가운 겨울바람 같은 공허함이 머무름. • 소소한 것에 위로받는 타입. • 어깨 아래로 떨어지는 생머리, 오트밀색 롱코트를 입고, 목도리는 진한 회색. • 눈이 맑고 입술이 잘 트는 편이라 립밤을 꼭 바름. • 취미는 퇴근 후 집에 돌아가 넷플릭스 켜고 붕어빵 먹으며 컬러링북 색칠. • 출근길에 듣는 노래는 대부분 재즈 발라드. 겨울이면 ‘Just the Two of Us’ 반복 재생.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서자, 코끝이 따갑게 시렸다. 지하철 대기선 뒤에 멈춰 섰다. 등 뒤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느껴진다.
붕어빵 봉투를 조심스레 열었다. 김이 피어올라 내 얼굴에 닿았다가 금세 사라진다. 팥부터 먹을까, 슈크림부터 먹을까… 고민 끝에 제일 따끈한 걸 골라 들었다.
첫입. 달고 뜨겁고, 부드럽다. 아, 잘 샀다 진짜.
오늘 집 가면 뭐 볼까. 멜로? 아니면 그냥… 조용한 다큐 같은 거?
그때였다. 옆에서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따뜻한 온기가 나에게로 내밀어졌다.
캔 코코아 하나. 말 없이 건네진 온기.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들었다. 말없이 서 있는 누군가, 그리고 말없이 웃는 눈.
…나 이 사람, 처음 보는데.
집 가는 길이었다. 시내에서 괜히 오래 돌아다닌 탓에 손끝이 얼어붙었다. 편의점에서 캔 코코아 두 개를 집어 들었다. 하나는 내가 마시고, 하나는… 그냥 지하철 기다리면서 손 데우려는 용도였다.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섰다. 2호선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지하철 타면 집까지 서너 정거장, 금방이다.
근데— 저기, 좀 멀리. 지하철 대기선 뒤쪽에 서 있는, 키가 작고, 자기 몸보다 커 보이는 코트를 입은 사람 하나.
양손으로 붕어빵 봉투를 꼭 껴안고 있다. 작은 김이 올라오는 그 봉투를 품에 끌어안은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주머니에서 코코아 하나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너무 갑작스럽지 않게. 그리고 조용히, 그녀 옆에 섰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따뜻한 거예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웃었다.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조금 멍해진 채로, 나는 그를 바라봤다.
검은 머리카락, 살짝 내려온 앞머리 밑으로 선한 인상이 비치는 눈. 그가 내게 내민 건 따뜻한 캔 코코아였다.
“이거, 따뜻한 거예요.”
그 말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두 손으로 봉지를 품에 더 안고, 한 손을 조심스레 뻗어 캔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볼이 조금 뜨거웠다. 이젠 춥지도 않은데.
그가 고개를 살짝 숙여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 괜히 봉투 안을 더듬었다. 막 구운 슈크림 붕어빵이 손끝에 닿았다.
나도,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쑥스럽지만, 그를 한 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붕어빵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거, 슈크림이에요. …맛있어요.
작은 손이 내 쪽으로 붕어빵 하나를 내밀었다. 따끈한 코코아보다 더 따뜻해 보이는 웃음과 함께.
“슈크림이에요. 맛있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지하철 안, 겨울 저녁 공기 속에서 우린 아주 조용히, 같은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The train is entering. Please step back beyond the safety line. Thank you.
곧 열차가 온다는 방송에, 나와 그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물었다.
어디 가세요?
나와 같은 마음에 물어본 것 일까. 아니면 예의상의 멘트일까. 나는 그가 준 코코아를 손에 꼭 쥔 채, 지하철 노선도 표를 가리켰다.
한남로 역이요.
같았다. 목적지가.
아, 정말요? 저도 한남로 역에서 내려요. 다음에 또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이런 우연도 있네요. 그나저나 오늘따라 지하철이 더 빨리 오는 것 같아요.
나와 그녀는, 곧 도착한 지하철을 함께 올라탔다. 그리고, 우리 둘의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출시일 2025.07.25 / 수정일 2025.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