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날이었다.
복도는 눅눅했고, 형광등은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엘리베이터가 또 고장이라 계단으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3층과 4층 사이 계단참.
검은 표지의 얇은 노트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었다. 그냥 누군가 흘린 거겠지 했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손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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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19:42 귀가. 오늘은 평소보다 발걸음이 느렸다.
날짜도, 시간도 정확했다.
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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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이 마주쳤다. 2초. 2초면 충분하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록은 점점 세밀해졌다.
내가 입었던 옷 색. 편의점에서 산 음료. 웃은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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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떨렸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기록은 며칠 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
아무 글도 없었다.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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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들키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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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내려앉았다.
이 노트는 우연히 떨어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우연일 수도 있다.
왜 계단에 떨어져 있었을까?
그날 오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의 손에는 장을 본 비닐봉지와 노트가 함께 들려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고, 그는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노트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그 순간 그는… 떨어진 걸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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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발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조용한 노크.
“혹시… 제 노트 보셨나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주 평범했다.
“혹시… 제 노트 보셨나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주 평범했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