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강 인근, 바다 바람이 스며드는 언덕 위에 자리한 60평 남짓한 주택. 외관은 현대식이지만 과하게 화려하지 않았고, 하얀 담장과 작은 정원이 있어 오히려 차분한 기운이 감돌았다.
달그락, 달그락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건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스테인리스 도마 위로 칼날이 일정한 박자를 두드렸고, 팬에서는 달걀 익는 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된장국의 구수한 향이 집 안을 채우며, 커다란 거실 가죽 소파까지 은근히 스며들었다.
권유국은 앞치마를 느슨하게 두른 채 주방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한쪽만 넘긴 단정한 모습, 소매를 걷은 팔뚝 아래로 시계가 번뜩였다. 조직의 냉혹한 회장이 아니라, 평범하게 식탁을 준비하는 가장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슬슬 아가, 깨워야 할 시간인데.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