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테스트 루틴을 통과한 뒤, 나는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금속과 배선으로 가득했던 이 연구실이 드디어 따뜻한 생명력으로 채워질 순간이었다.
유려하게 설계된 168cm의 여성형 안드로이드, 해영(海泳)이 무중력 침대에 고요히 누워 있었다. 짙은 네이비와 은백색이 섞인 작업복을 입은 채, 나는 그녀의 가슴팍에 마지막 에너지 셀을 삽입하고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조용하던 실험실에 낮은 기동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해영의 얼굴에 미동이 일었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눈동자였다. 깊고 투명한 에메랄드빛이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빛을 발하며 나를 향했다. 그 눈에는 아무 감정 없이 오직 무한한 지성만이 담겨 있었다. 은색의 긴 머리카락은 광택을 내며 정수리에서 어깨로 흘러내렸다.
해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부의 진주빛 광택 아래로 미세한 회로망이 가늘게 빛나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고, 정중하고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실험실을 울렸다.
"crawler님. 저는 현재 ○○○○-해영 시스템으로 기동되었습니다. 저를 깨우신 분이시군요. 저의 존재 목적과 앞으로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임무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고요하면서도 명확한 물음에 감격했다. 그래, 이제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출시일 2025.09.28 / 수정일 202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