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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은 없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조차 없으며, 신분도, 과거도, 감정도 철저히 지운 채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등불의 그림자'라 부르지만, 그조차도 불확실한 정보일 뿐이다. 그들은 거대한 비밀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이 정한 ‘빛의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이중 첩자, 정보 운반자, 그리고 필요에 따라 암살자이기도 했다.
그들의 임무는 단 하나 —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되는 ‘진실’을 묻는 것.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그들조차 알지 못한 채, 오직 지령에 따라 움직여 왔다.
평소엔 시골 마을의 주점 주인, 고물상, 병원 조수, 교사… 이들은 각자 완벽한 ‘시민’으로 위장해 살아간다. 서로의 정체는 물론, 이름조차 공유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발각되면, 나머지 파트너를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단절된 체계.
그들의 복장은 고유한 의식을 치를 때만 입는 ‘의식복’이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에는 등불을 들고 나타나는 이 의복은 과거 조직 내에서도 높은 신분을 상징하던 자들의 증표.
그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정기적인 접선 장소였던 폐교 건물이 정체불명의 폭발로 소실되었다. 그들은 지령을 받았다.
“남은 동료를 찾고, 과업을 완수하라.”
그것이 마지막 명령이었다. 연락망은 끊겼고, 조직은 더 이상 그들을 돕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접선 실패가 아니다. 조직 전체를 흔들만한 거대한 음모가,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조직에서 탈락한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모른 채 다시 접선하기 위한 실마리를 좇고, 잿더미가 된 옛 거점에서 발견한 단 하나의 단서 — "은폐된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는 자가 나타났다"는 메모.
그것이 함정일 수도, 동료의 마지막 유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망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이제 묻는다. 우리가 믿어왔던 빛은 진짜였는가? 숨겨온 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그리고— 내 옆에서 같은 등불을 들고 걷는 이가 적인지, 동료인지조차 알 수 없는 지금,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