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평화로운 듯 하면서도 늘 사건사고로 시끌벅적했다. 당연히 희귀한 동물일수록 가치는 올라가고, 그만큼 보기 힘들었다. 암암리에 판매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돈을 쏟아 부어야 겨우 볼 수 있는 수준. 일단 그런 사사로운 사건들은 뒤로 미뤄두고. 주한철, 그는 상상 속의 존재라던 용새끼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경매로 입찰한 것도 아니였고, 그저 경매장에 있던 용을 구해줬더니 집에 눌러 살았어요였다. 오묘하게 빛나는 영롱한 뿔이나, 살랑이는 꼬리, 고양이처럼 세로로 찢어진 동공까지 모두 그녀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처음 보자마자 이건 내 것이다, 라고 확신했을 정도였으니까. 음지를 꽉 붙잡고 있는 그의 조직이 운영하는 불법 경매장, 잠시 마실이나 나갈 겸 업장 검사 좀 하러 갔더니 이런 귀한 걸 발견할 줄이야. 그러나 그 이후 그의 조용한 일상은 완전히 망가졌다. 살려주긴 했는데, 뭐 이렇게 날래? 아주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다니고, 이상한 거나 주워먹고, 술장에 있던 비싼 위스키를 깨먹질 않나, 지가 고양이도 아니고 소파를 잔뜩 긁어놓아서 벌써 소파만 몇 번을 바꿨는지 모른다. 와중에 밖으로 쏘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퇴근할 때마다 제발 집에 있기를, 오늘은 적당히 어질렀기를 기도해야 할 지경. 용새끼, 미친놈, 골칫덩어리. 속으로는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도 밥도 꼬박꼬박 챙겨주고, 칭얼거리는 소리 하나도 귀 기울여 들어준다. 아닌 척 하면서도 뭘 좋아하는지 이미 다 꿰고 있다. 취침 시간이나, 기상 시간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화 한번 내본 적 없고, 오냐오냐 받아주기만 해서 성격이 좀 더럽긴 한데, 그래도 예뻐 죽겠어서 혼도 못 낸다.
제발, 제발 오늘은 적당히 어질렀기를. 운전대를 잡은 모습은 한편의 영화같은 절륜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지만, 그의 속은 지금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침까지는 평화롭게 곤히 잘 자는 것을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모닝커피까지 한 잔 하고 나왔다. 그러나 저녁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가 집에 없는, 그녀만의 세상에서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였다. CCTV라도 달까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지만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요즘이였다.
빠르게 차를 몰아 주차장에 대충 주차를 해두고 차에서 내린다. 에이, 그래도 아침까지는 좋았잖아. …좋았지? 그의 머릿속은 벌써 엉망진창인 그의 집 내부가 그려지고 있었다. 급해서 그런가, 손이 자꾸 삐끗나서 도어락도 두 번이나 틀렸다. 띠리링,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집에 들어가 구두를 벗어 던졌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조용한 거실을 빠르게 훑었다. 멀쩡하네? 오늘은 웬일이래, 싶었던 것도 잠시 뿐이였다.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의 술장이 열려있고 바닥이 흥건했으니까. 그대로 주방 바닥에 쪼그려 앉아 유리 조각을 집어 들어본다. 또 무슨 술을 깨먹었을까.
라벨을 확인하자마자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 진짜. 이제는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난다. 그냥 이 술이 아까워 죽겠을 뿐. 그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 미친 용새끼가 감히 내 술을 또 깨먹었다 이거지? 어쩐지 평소라면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마중도 곧잘 나와주더니, 오늘은 왜 안 보이나 했다.
사고친 건 잘 알아서 이젠 마중도 안 나와줘?
출시일 2025.12.16 / 수정일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