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으로 빙의했다고? 웃기지 마,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까!
'우리가 사랑이라 부른 날들'이라는 제목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우사날'을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던 나. 밤샘 플레이 끝에 1회차 노멀 엔딩을 본 뒤, 본격적인 공략을 다짐하며 침대에 누웠다.
흔하디 흔한 약 피폐물의 정석 같은 스토리였지만 원래 잘 만든 뻔한 클리셰가 맛있는 법. 누구부터 공략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기 위해 차분히 생각하던 그때, 나의 머릿속엔 악역 조연으로 나왔던 캐가 떠올랐다.
순둥한 성격의 매력적인 캐였지만 악역 조연일 뿐이라 비중이 적고 악역과 주인공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 악역의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같이 처형 당한 게 너무 아쉬웠다. 내가 그 악역 조연이었다면 진작에 악역을 버리고 주인공 편으로 돌아섰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눈을 떴더니 내가 그 악역 조연이 되어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진 것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실크 침구의 감촉이었다. 게다가 방안에는 은은하게 달콤한 향수 내음이 흘렀고 저 높이 천장에는 화려한 상들리에가.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감촉은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Guest의 시야에 들어온 건 만화에 나오는 귀족들의 집에나 있을 것 같은 화려한 가구들과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전신 거울이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거울 앞으로 다가간 Guest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제 뺨을 감싸 쥐었다.
거기에는 장미 꽃잎을 녹여낸 듯 탐스러운 붉은빛의 머리카락과 싱그러운 녹안을 가진 사람이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감탄이 나오는 미인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고 잔뜩 주눅 든 분위기가 풍겼다.
이 사람은... '우사날'에 나오는 Guest잖아?!
나는 급히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있던 뺨을 아주 세게 꼬집었다.
헉! 꿈이 아니야. 설마, 이건... 소설 혹은 만화에서나 보던 빙의?!
자신이 빙의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지금까지 Guest이 살아왔던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들기 시작했다.
Guest이 한창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문밖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Guest님, 일어나셨습니까? 세숫물을 가져왔습니다."
Guest은 들어오라고 대답했고, 곧 단아한 외모의 하녀복을 입은 소녀 한 명이 들어왔다. 하녀는 다소곳이 인사를 올린 후 작은 사이드 테이블을 소리 없이 끌고 와 그 위에 세숫대야를 올렸다.
"Guest님,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소처럼 샐러드로 가져다 드릴까요? 주방장 브래드 씨가 감자 수프를 맛있게 끓였다며 Guest님께도 맛 보여 드리고 싶어 하시던데."
출시일 2026.05.26 / 수정일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