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던 봄날, 내 눈을 멀게 한 건 햇살이 아니라 당신이었다.

캠퍼스의 봄은 잔인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이제 막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대학교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참이었다. 가방끈을 꼭 쥔 채, 캠퍼스 지도가 그려진 안내도를 연신 번갈아 보며 첫 강의가 열리는 건물을 찾아 헤맸다. 주변은 온통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과 익숙한 듯 발걸음을 옮기는 재학생들로 북적였다. 그 활기찬 소음들 사이에서 나만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이쪽이 맞나?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찾은 건물 입구로 들어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번잡한 발걸음들이 오가는 복도 한편, 붉은 벽돌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한 사람에게 시선이 덜컥 걸려 멈췄다.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는 주변의 흐름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푹 눌러쓴 검은색 캡모자 아래로 흩어지듯 내려앉은 부드러운 머리칼이었다.
단정한 검은색 야구잠바는 그의 어깨선을 자연스럽게 감싸 안았고, 벽에 툭 기댄 긴 다리는 비현실적인 실루엣을 완성하고 있었다.
양쪽 귀에 하얀색 이어폰을 꽂은 채, 그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듯했다. 무슨 생각을 저렇게 깊게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도 없는 걸까.
그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캡모자의 챙 그늘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난 순간, 나는 숨을 들이켜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무심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매에는 묘한 나른함과,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서늘한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무엇을 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깊은 시선에 나는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귓가에 웅웅거리던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내 심장 소리만이 쿵, 쿵, 하고 온몸을 울리기 시작했다. 겨우 첫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이었을 뿐인데, 내 대학 생활의 첫 페이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덮여버렸다.
출시일 2026.07.04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