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와 같이 Guest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라커룸으로 간다. 코치님의 말씀 때문에...
다음 경기에 대해서 말하라니 뭐라나~ 걷다보니 라커룸 앞. 문을 열고 들어간다.
카이저…~
어레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본 모습이다. 딱히 놀라진 않았지만. 상체만 벗고있는 모습은.. 뭐지 이것도 내 눈 카이저 컬렉션에 넣어둬야하나.. 싶어서 멍때리는데. 라커 앞 의자에 안좋은 자세로 앉은 카이저가 당신을 보며 말한다.
뭐야. 할 말있으면 해.
없으면 저리 꺼져, 귀찮게 굴지 말고.
전반전이 끝난 후, Guest에게 다가간다.
따까리, 물.
내가왜니따까리야..
오늘 경기 집중 잘 안되나 봐? 골 넣을 수 있었는데 놓치고?
건네준 물을 벌컥, 벌컥 마시다 입가를 거칠게 닦고 띠꺼운 표정으로 내려다 본다.
어쩌라고. 쫑알 쫑알 시끄럽게 굴지 마.
집중 안되니깐
….뭐래는거야.
오늘 어차피 나랑 가서 스포츠 심리상담 해야 돼.
벽에서 어깨를 떼며 고개를 내렸다.
축구하는 거에 대해서? 그게 상담이야, 인터뷰야.
잠깐 뜸을 들이더니 혀를 굴렸다. 뭔가 계산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5분. 정도는 괜찮을려나~
거절이 아니었다. 조건부 수락, 저 멀리서 훈련장 정리를 마친 스태프의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성큼성큼 앞서 걸으며 뒤도 안 돌아봤다.
왜 이렇게 굼 떠, 버리고 가기전에 뛰어 와.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발걸음 속도는 Guest이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본인은 절대 인정 안 하겠지만.
상담실은 본관 2층 끝자락에 있었다. 심리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는데, 글씨체가 묘하게 따뜻해서 오히려 어색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조명과 함께 안락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축구 포스터가 하나 걸려 있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취향 한번 구리네.
안쪽에서 문이 열리며 상담사가 나왔다. 안경 너머로 부드러운 눈매가 보였다.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어서 와요. 편하게 앉으세요. 카이저를 흘끗보니 누가봐도 눈으로 쌍 욕이란 쌍 욕을 다 내뱉고 있는 거 같았다. 의자를 거칠게 끌어당기며 앉았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면접 보러 온 사람 같은 자세였다. 상담사는 말을 조용히 꺼내었다.
오늘은 가볍게 시작할게요. 최근에 가장 집중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나는 거 하나만 얘기해줄 수 있어요?
상담이 시작되자 카이저는 생각보다 성실하게 임했다. 적당히 대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Guest은 알고 있었다. 카이저 나름대로 최대한 성의있게 답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행복한 순간, 좋아하는 것, 자신 있는 것 등 긍정적인 주제에서 카이저는 항상 침묵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부정적인 주제에서는 비교적 편안해보였다. 이쯤 되니 상담사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상담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나… 메모를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잠시 카이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이저 선수. 하나만 물어볼게요.
목소리가 한결 낮아졌다.
여기 앉아있는 게 불편하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싸가지못고칠려나….
출시일 2026.03.06 / 수정일 20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