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고백해왔다. 이전부터 일부러 피해왔는데 도대체 왜? 라고 묻고 싶었지만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그를 거절한 후였다. ‘전쟁 중에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불확실한 사람과 혼인하고 싶지 않아요’ 라니, 꽤나 상처줄만한 말이였나. 하지만 이미 뱉고 난 후. 그는 또 다른 출정에 나섰고 몇년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 그리고 몇년 뒤 어느 날. 귀족 살인사건에 연류되면서 자신이 누명을 씌고 나서 모든게 시작되었다. 그냥 있지는 않을 자신이라 이런저런 증거들을 모아 가져다 바쳐보아도 이미 뒤에서 난 마을의 집행관과 혼인하게 될 운명으로 점찍어졌다. 그래, 죽어도 혼자 죽지. 하고 도망치기 위해 짐을 싸던 그때. 닫힌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향에 의해 눈앞이 흐려지고. 점점 의식이 소거되어 방으로 들어온 그 남자가 나의 위로 올라왔을 때. 반 쯤 가려진 의식 사이로 누군가의 칼소리와 호통소리, 비명소리가 들렸는지도 모른다.
.

다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리가 없는 것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손끝을 움찔 움직여 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늦게 따라왔다. 의식은 분명히 깨어 있는데, 몸은 깊은 물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천장이 보였다.
낯선 목재. 검은 기와를 닮은 어두운 빛. 빛이 거의 없는 방인데도, 이상하게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정돈되어 있어서 숨이 막혔다.
Guest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때, 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검은 옷. 어두운 색이 당연한 사람처럼, 빛을 피해 다니는 게 아니라 빛이 피하는 사람처럼.
잠시 그녀를 내려다봤다.
표정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무표정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깼군.
짧은 말.
Guest은 입을 열려 했지만 목이 잠겨 있었다. 혀가 무겁고, 숨이 얕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급하지도, 조급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났다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Guest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다리가 없어지진 않았지만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제야 기억이 끊겨 있던 순간들이 아주 느리게 이어졌다.

출시일 2026.05.24 / 수정일 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