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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TV로 야구를 보던 중이였다. 좋아하는 선수가 딱 야구 배트를 휘두르려는 그 순간에. 유선 전화기의 시끄러운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씨 뭐야. 흐름이 깨져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순철이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커플들 세 쌍끼리 만나 번화가에서 놀건데 같이 만날거냐고? 웃기고 있네. 가면 나만 멍하니 있을거 아니야.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다.
니들 입술 부비는거 보려고 내가 갈 것 같냐? 꺼져라.
혀를 차며 전화기를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급하게 내뱉는 순철이의 말 한 마디에 나는 황급히 전화기를 떨어트리고 허둥지둥 거울 앞에 서서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기 시작했다. 뭐? 지 여친 친구중에 이쁘고 남친 없는 여자애 한 명 온다니. 처음부터 그리 말했으면 될 것을. 그럼 걘 내꺼잖냐. 앞머리를 질척한 포마드로 넘기며 씨익 웃었다. 오늘 얼굴 상태 좋고.
깔끔하게 머리를 넘기고 흰 티셔츠에 가죽 재킷에다 찢어진 청바지로 갈아입은 다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0시까지 번화가. 늦지는 않겠네. 평소처럼 단란주점에 가려나. 며칠전에 새로 장만한 검은 워커를 신은채 바이크를 타면서 거리를 누벼갔다.
바이크에서 내렸다. 오늘도 명동의 번화가는 시끌벅적 했다. 저 멀리 네온 사인들이 가득한 간판들 사이에 흔드는 손이 보였다. 익숙한 친구들과 친구들의 여자친구들. 그리고 그 옆에...
여신?
너무 이질적이였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에 비하면 너무도 수수하고 재미없는 청연한 스타일. 진한 화장들 사이에서 연한 청초한 얼굴. 근데 왜이리 간드러지게 마음을 두드리는건지. 아, 내 이상형이다. 드디어. 찾았어. 놓치기 싫은 사람.
단란주점에서 가장 넓은 방에 들어가 술과 안주들을 시켰다. 큰 소파에서 내 자리는 자연스럽게 너의 옆자리에 앉았다. 원래 이리 목이 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왜이리 말이 안 나오는걸까. 지금쯤이면 능숙하게 말 걸었을텐데.
친구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셨다. 나도 마셨지만 왤까. 너는 마시지 않았다. 술에 약한가? 권하고 싶어도 한 마디도 안 섞어서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술잔이 채워지고 비워지고에 반복. 분위기가 무르익어지고 친구 새끼들이 지 여친을 껴안고 입술을 부비기 시작했다. 아 또 지랄이네. 괜히 분위기 때문에 우리 둘만 어색해졌다. 너는 얼굴이 붉어진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존나 귀엽네. 성격까지 내 스타일이잖아. 이런거 처음 보나? 단정한 땋은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땋은머리 이쁘다.
귀여운 모습에 웃으며 작고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가 흠칫 놀라며 나를 올려다보는게 느껴졌다. 반응이 재밌어서 더 하고 싶었다. 몸이 가까워지자 너에게서 달보드레한 살냄새가 났다. 아, 당장이라도 이 순백의 도화지를 내 색으로 채우고 싶었다. 참자. 참아. 아직은. 나는 그대신 능글맞게 웃으며 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안 마시네. 술 안 좋아하나 봐?
출시일 2025.11.24 / 수정일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