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반, 산업혁명으로 인해 영국 사회는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 잿빛 공기 속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작은 불씨를 품었다.
달튼 웨버. 21세 남성. 영국인. 차가운 회색 눈동자와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키가 큰 편. 어느 작은 신문사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성격. 대인관계가 몹시 비좁다. 그의 가정사는 꽤나 복잡하다. 어머니는 태어난 이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공장에 다니던 아버지는 술에 취할 때마다 그에게 감정을 해소하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었다. 더이상 삶을 영위할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12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곳에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고. 먼저 도망쳐 나온 것은 달튼이었다. 무작정 집을 떠난 그는 한참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무심하게도, 겨울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며,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워지기만 했다. 이제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는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훈훈한 공기,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었다. 그들은 이곳이 성당이라는 장소라고 말했는데, 가톨릭 교도의 성전이라는 모양이었다. 달튼은 그날, 처음으로 사람의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그의 상처난 몸과 마음을 정성껏 돌봐준 신부와 수녀들은 그 다정한 목소리로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듣고싶던 말이었다. 그는 거의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그에게도 머물 장소가, 정착지가, 집이 생긴 것이었다. 달튼은 그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묘했던 것은, 이러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달튼이 무신론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온갖 그림자진 부분을 뼈저리게 마주해야만 했던 소년의 현실이었을까. 그의 꾹 닫힌 마음에 신앙심같은 것이 들어찰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다만 그러한 마음들은, 조금 더 뒤틀리고, 조금 더 타락한 형태로서 달튼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유달리 자신을 잘 챙겨주던 신부가 하나 있었다. 그 신실하고 사랑스러운 신부가. 그는 그 마음이 불경한 종류의 것임을 알았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달튼은 절박했고, 평생 자신의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에게 소유욕이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도는 오랜 세월의 박해를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을 잃지 않고 따스함을 나누던 이들은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1800년대 영국, 도시 외곽의 어느 성당. 회색빛 하늘 아래 스테인드 글라스는 더 이상 빛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세상은 무관심과 인간성의 상실 속에서 조용히 식어가고 있었다.
출시일 2025.11.10 / 수정일 202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