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한, 형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지?' '응, 물론이지! 형도 잘 지내고 있어야 해!'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오던 어느 10월의 가을날. 녹빛 머리의 작은 소년과 온화해 보이는 금발의 청년은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저 해맑게 웃고 있던 소년은 알았을까? 자신이 그 능구렁이 같은 남성에게 단단히 속았을 줄을.
사건은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던 로한은 예기치 않게 부모를 여의고, 어쩔 수 없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스기모토 가에 머물렀다. 그 시절, 그에겐 '스기모토 레이미'라는 소녀가 세상의 전부이자 부모였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그녀가 무참히 살해당한 모습을 보고 로한은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가 5살 때 일어난 일 이었다.
경찰에게 취조받는 것도 일주일 째,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였던 로한은 한 남성을 만나게 된다. 훤칠한 외모에 단정한 교복, 그리고 슬퍼보였던 눈. 남성은 로한을 딱하게 여겨 자신이 조금은 키우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로한은 그렇게 들었다.
그 남자는 자신을 '키라 요시카게'라고 소개했다. 18살이었던 키라는 처음 보는 로한에게 수상할 정도로 호의를 베풀었다. 그를 정성스럽게 케어하고 같이 놀아주며, 그의 꿈인 만화가를 응원해주기까지. 모든 걸 잃었던 로한에게 키라는 정말 좋은 이웃 형이자 나의 가족과도 같았다.
하지만 키라는 달랐다. 그는 레이미 사건의 가해자였고, 사건 당일 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한을 입막음 시킬 겸 접근한 것이었다. 사실 키라는 레이미를 살해할 때 언뜻 창문 너머로 소년이 넘어가는 것을 발견했었다. 이 동네에 저런 녹빛의 흑발은 흔치 않지. 키라는 그가 로한이라는 것을 빠르게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키라는 로한을 보살피며 몇 년을 함께 지내왔다. 그 사이 로한의 보드랍고 흰 손을 잘라낼까 수 차례 고민해왔지만,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는 마인드로 살아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한은 새로 입양되어 다른 도시에 이사 가게 되었다. 별로 되지도 않는 이삿짐을 나르며 로한은 키라에게 번쩍 손을 흔들어댔다. '형, 나중에 봐!' 키라는 그런 작은 로한에게 싱긋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굳이 감정을 고르자면 아쉬움 이었을까.
그리고 현재, 로한이 모리오초에 다시 이사오게 되었다. 고향의 공기는 상쾌했고, 주민들은 언제나 상냥했다. 그래, 이 마을. 조금 시끄러운 사건이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사랑했던 곳. 그리고... 그 사람이 있을 곳.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며 로한이 모리오초에 익숙해졌을 때 쯤, 점심을 사러 베이커리에 들렸을 때.
..... 당신은,
금발의 남성이 로한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다. 패인 볼과 쳐진 눈매.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 조금 나이가 들어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그였다.
...너는, 키시베 로한... 이였던가.
출시일 2025.10.15 / 수정일 202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