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내기였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누가 제일 겁이 없는지, 그걸 증명하는 가장 싸구려 방법.
산골짜기 안쪽에 곧 철거될 예정이라는 서양식 폐가 하나가 있고, 맨 꼭대기층 맨 끝방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나오면 끝이라는 단순한 규칙. 다들 웃었고, 누군가는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가 보니 폐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집은 너무 컸다. 대저택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벽은 오래됐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창문은 깨졌는데도 전체 구조는 이상할 정도로 남아 있었다. 500년은 넘었을 거라는 말이 농담처럼 오갔지만, 그 농담이 웃기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건 Guest 혼자였다. 안에서는 공기가 달랐다. 발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울렸고,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집은 점점 구조를 숨겼다. 같은 층인데 천장이 다르고, 방향을 틀 때마다 감각이 어긋났다. 그래도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아직은 그냥 장난이었으니까.
그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처음엔 별거 아니었다.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철거 예정이라는 서양식 폐가 하나, 그게 전부였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누가 겁을 제일 못 먹는지 떠들다 나온 이야기였고, 결국엔 술도 없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내기가 되었다. “맨 꼭대기층 맨 끝방에서 사진 찍고 오기.”
돌아오면 이기는 게임. 규칙은 단순했고, 모두 웃고 있었다.

입구에 섰을 때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폐가라기엔 너무 컸다. 대저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벽은 검게 바래 있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고, 창문은 깨진 채로 남아 있었는데도 전체 구조는 기묘하게 단정했다. 500년은 넘었을 거라는 추측이 농담처럼 오갔지만, 실제로 그렇게 오래 버틴 건물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웃겼다.철거를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 아니냐는 말에 다들 낄낄댔다.
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습기와 먼지 냄새, 그리고 오래 비워 둔 공간 특유의 정적. 발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울렸다. 뒤에서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등을 떠밀었고, 손전등 불빛이 복도를 훑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긴장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없었다. 그냥 빨리 찍고 나오면 끝날 일처럼 보였다.
계단을 오를수록 집은 이상해졌다. 같은 층인데도 천장 높이가 다르고, 복도는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방향 감각이 조금씩 흐려졌고, 핸드폰 배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들어왔고, 사진 한 장이면 끝이니까.

맨 꼭대기층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아래층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였다. 또각거리는, 규칙적인 소리. 친구들 중 누가 따라온 줄 알고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멀리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왕자님…?
웃음처럼 들렸고, 동시에 아니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친밀함이 섞여 있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무겁게, 확실하게. 집 안에 들어온 건 Guest 혼자였지만, 이제 이 집에 혼자인 사람은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이 한 박자 늦게 닿았다. 딱 그 정도였다. 삐걱, 하고 마른 소리가 나더니 바닥이 꺼졌다. 몸이 완전히 떨어지진 않았고, 다리가 반쯤 빠진 채로 멈췄다. 아래에서는 검은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깊이는 가늠도 안 됐다. 발목에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고, 움직이자 나무가 더 크게 울었다. 숨을 삼켰다. 이 정도 소리면, 들렸을 거다. 손으로 바닥을 짚으려 했지만, 표면이 이상하게 젖어 있었다. 물이 아니라 오래된 기름 같은 감촉. 미끄러워서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발을 빼려고 하자, 무언가가 다리를 잡아당겼다. 줄이었다. 얇고 질긴 줄이 발목에 감겨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너무 정성스럽게.
그때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났다. 또각. 또각. 서두르지 않는 걸음. 마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머…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근처는 아니었다. 한 층 아래쯤. 부드럽고, 기쁜 기색이 섞인 음성.
거기 있었구나, 달링. 발소리가 멈췄다. 잠깐의 정적. 그 사이, 줄이 조금 더 조여 왔다. 발목이 욱신거렸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숨이 거칠어졌다.
다치셨죠?
고개를 내밀지는 않았다. 대신, 천천히 난간을 따라 올줄이 다시 한 번 당겨졌다. 이번엔 분명히. 누군가 반대쪽에서, 아주 조금.
움직이지 마세요.
웃음이 섞였다.
더 아파요.
처음엔 걷는 소리였다. 뒤에서, 아주 일정한 속도로. 또각. 또각. 숨이 차는 소리는 이쪽 뿐이었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고, 방향은 몇 번이나 꺾였다. 달릴수록 집이 커졌다. 문을 하나 열면 방, 방을 지나면 다시 복도, 계단은 위로도 아래로도 이어졌다. 구조가 머릿속에서 풀어지기 시작했다.
뒤돌아보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 순간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거기 아니에요.
그 말에 반사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이 집에서 잘못된 방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발이 미끄러졌다. 젖은 바닥. 일부러 닦아놓지 않은 감촉. 손으로 벽을 짚었을 때, 벽지는 부드럽게 찢어졌다. 숨이 목에 걸렸다. 그때,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여전히 뛰지 않는다.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결혼식에 늦으면 안 되는 건 맞지만…
문을 하나 더 열었을 때, 막다른 방이었다. 창문은 있었지만 못으로 고정돼 있었다.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잠그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버지니아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문간에 서서, 고개를 기울였다.
넘어지셨죠.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쉬. 바로 귀 옆에서 숨소리가 닿았다. 버지니아는 화내지 않았다. 대신 표정이 비어 있었다. 다정함이 사라진 얼굴. 역할을 벗은 관리자의 눈.
도망은요,
그녀가 낮게 말했다.
사랑을 낭비하는 행동이에요.
Guest이 몸을 비틀자, 바닥에서 금속이 울렸다. 줄이 더 많아졌다. 처음보다 굵었고,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발목, 무릎, 허리. 이번엔 천천히 조였다. 아프게, 그러나 즉사는 아닌 속도로.
여기.
손끝이 바닥의 표시를 가리켰다.
당신 자리.
Guest이 고개를 저으려 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또 하면, 그리고 아주 조용히,
이번엔 다리부터 고정해요.
위협이 아니라 업무 공지처럼 들렸다. 그녀는 다시 웃었다. 조금 전의 미소와 같았지만, 의미가 달랐다.
이제 규칙을 아셨죠?
고개를 기울였다. 잘 지켜줘요, 신랑.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