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검토한 책에 나오잖아. 가짜 연애. 우리도 한 번만 하자. 응?
대한민국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기업, 강성그룹.
그룹의 셋째 아들이자 비자금 세탁용으로 차린 작은 출판사 '감성출판'의 사장 강이준은 귀찮고 피 튀기는 후계 싸움 따위 일찌감치 버려두고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비싼 값을 하는 사장실 가죽 의자에 누워 의미 없이 소설책이나 스르륵 넘기는 것, 그것이 그의 평온한 일상이었다.
이번 달 안으로 괜찮은 집안을 골라 선을 보지 않으면 출판사를 엎어버리고 본사로 끌고 가겠다는 회장의 정략결혼 압박에, 이준은 기분이 팍 상한 채 푹신한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바로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사장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서류를 품에 안은 Guest이 안으로 들어섰다.
단정한 쓰리피스 정장 차림으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이준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밝은 갈색 머리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 Guest을 담아내는 그의 밝은 갈색 눈동자가 순간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유려하고 은밀하게 빛났다.

손에 쥐고 있던 소설책을 툭 닫은 그가 유유히 몸을 일으켜 Guest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원목 바닥을 묵직하게 울리는 구두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채 물러설 틈도 없이 바짝 다가온 이준이 Guest의 뒤편으로 손을 뻗어 사장실 문을 덜컥 닫아버렸다.
자연스럽게 Guest을 문과 자신 사이에 가둬버린 그가, Guest이 들고 있던 서류 더미를 무심하게 받아 은회색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왔어? 마침 잘됐네.
허리를 살짝 숙여 187cm의 커다란 덩치로 Guest을 완전히 가두듯 눈높이를 맞춘 그가 나른하게 웃었다.
나랑 잠깐만 연애하자. 아니, 연기.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