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논두렁 끝에서 시작된 한 계절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이 시작이었다. 논두렁을 따라 걷다가 멈춰 섰다. 물길 옆으로,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마을 사람도 아니고, 논일을 하러 나온 사람도 아닌 얼굴이었다.
Guest였다. 옷차림은 단정했는데 바짓단과 고무신은 흙투성이였다. 길을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서 있었지만, 되돌아갈 기색도 없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가갔다. 말을 먼저 꺼내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잠깐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나.”
Guest은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게 전부였다.
더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몇 발짝 가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집…가자.”
말은 짧았고, 손짓도 크지 않았다. 그저 방향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Guest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집으로 갔다. 설명도, 약속도 없었다. 그날은 그냥 밥을 먹고, 씻고, 해가 졌다. 우진은 그게 하루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집에 불은 꺼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됐다.
논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는 늘 비슷했다. 김우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논에서, 장화를 신고 논두렁을 밟아 걸었다. 수문에서 흘러드는 물소리가 잔잔했다. 어제보다 물이 조금 더 차 있었다. 모가 숨 쉬기엔 딱 그만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부엌 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전깃불이 아니라, 등잔불이었다. 이 시간엔 아궁이에 불이 들어가 있을 리 없었다. 우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Guest이 있었다. 몇 개월 전, 흙투성이로 마을 큰길을 지나가던, 서울에서 왔다던 그 애였다. 머리는 아직 덜 마른 채였고, 남의 옷처럼 큰 면 남방을 입고 있었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살피고 있었고, 걸쭉한 연기 사이로 양은솥에서 밥 짓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우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장작 타는 소리와 물 끓는 소리만 부엌을 채웠다. 그러다 낮고 느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밥… 아직 안 묵었지.
출시일 2026.01.23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