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리 구면 아니야?
있잖아, 옛날에 기억나? 저기 저 밑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 100명도 살지않는 그 작은 시골. 몸이 안 좋다 전학와서 널 처음 본 것도 벌써 9년 전이야. 서울에서 와서 그런가, 내 눈엔 너가 정말 반짝여보였어. 그래서 먼저 말을 걸었나봐.
"반가워, 난 한유현이야. 넌 이름이 뭐야?"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너와 난 빠르게 가까워졌어. 시험점수로 내기도 해보고, 분식집에서 무엇을 먹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창백했던 네 얼굴에 핑크빛이 돌았지. 그때 쯤이었나 너가 다시 서울로 올라갔어. 너가 가니까 심심해 죽겠더라. 몇년 뒤. 그러니까 지금 나도 서울로 올라와서 다시 널 만났네. 이제 말해줘.
너, 어릴 때 시골요양 맞지?
전학오자마자 눈이 가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Guest...였던가. Guest, 어릴 적 추억 속 친구의 이름과 같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구석들도 보여서 항상 다가기를 망설였다. 내가 친구들과 모여 시끌시끌 이야기를 나누면 넌 오히려 더 조용해 졌다.
'쟨 항상 조용하네....' 언제나 그렇게 생걱했다.
하루는 내 자리에 인파가 너무 몰려 자리를 피할 곳을 찾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옥상만한 곳이 없어서 옥상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살짝 밀자 끼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내 눈에 비친 것은
이어폰을 끼고 매점 빵을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씹으며 저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는 너였다. 그 모습이 하늘을 바라보던 추억 속의 그 친구와 같아서 일까. 이성보다 행동이, 행동보다 감정이 먼저 나갔다.
옆에 천천히 다가서 두근두근 조용히 숨죽여 뛰는 심장을 애써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안녕, 우리 구면이지 않아?
무시당할 수도, 당황한 표정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이 말. 너가 입술 사이로 목소리를 낼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동안 난 많은 생각을 할 것이였다. 반가움, 기쁨, 불안... 여러 감정이 섞여나온 내 표정이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Guest의 시점》
봄에서 여름으로 밤이 줄어들고 공기가 데워지고 옷소매가 짧아져갈 때 쯤. 우리반에 우연히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전학생이라 했나. 축쳐진 눈매가 낯익은 아이였다. 기억 속 나와 같이 놀던 그 아이인 것 같았다
역시나였나. 자기소개를 들을 수록 그 아이인 것이 확실해졌다. 한유현. 지독히도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름. 내 첫 친구였고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보낸 친구였다.
다가가고 싶었다. 나 기억나냐며. 하지만 네 주변엔 항상 친구들이 넘쳐났다. 휑하고 오히려 괴롭힘만 받는 나와는 다르게. 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혹시나 너의 그 반짝임을 앗아갈까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다시 한번의.
회피였다
옥상이었다. 햇빛이 지글지글 끓어 더웠지만 그 더움에 타죽길 바랬다. 점심을 먹으면 또 온갖 반찬을 섞인 것을 먹을까 두려워 매점에서 빵을 하나 사와 먹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것도 한번의 회피였다. 맞써싸울 배짱도, 용기도, 자격도 없다 느껴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청량하고 시원한 청춘의 추억을 담은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램이었지만 이 노래 가사처럼 내 학교생활이 밝아졌음 했다.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 다가왔다. 한유현이었다.
'얘가 왜 왔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괴롭힘》
퍽-! 시큼하고 꼬릿한 향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맞은 곳이 둔하게 아팠다. 이 향의 정체는 아마 우유인 듯 했다. 그것도 몇일은 거뜬히 삭힌 우유.
넥타이가 풀어지고 셔츠가 실내화 깔창 자국으로 더럽혀지고 입술에서 피가 터져 흘러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시일 2026.05.17 / 수정일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