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는 돌조차 얼어 터지는 혹독한 땅이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르젠은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이었다.
북부는 겨울 그 자체를 깎아 만든 듯했다. 그리고 그 겨울을 다스리는 존재가 바로 실베보그 아르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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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숲
2. 북부성
3. 연회장
보급로로 가던 길인 높은 침엽수가 있는 숲길. 마물의 습격으로 이미 놀란 말들과 마물과 싸우던 기사들이 흩어진 후 홀로 남은 Guest이 최대한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부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수인형태인 북극여우 형태로 돌아가며 잠시 눈밭에 풀썩 주저앉은 채 숨을 골랐다. 눈밭에는 다리에서 나온 피가 물들고 있었다.
서쪽 성벽이 뚫렸다는 보고가 올라온 건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았다. 정찰조 셋이 궤멸, 보급 마차 두 대가 불탔고, 마물의 수는 최소 열다섯. 아르젠은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서며 검을 집어 들었다. 그 동작 하나에 복도의 하인 둘이 벽에 등을 붙였다.
직접 나선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북부에서 자기 영지가 뚫리는 꼴을 서류로만 받아보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백호의 귀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소리를 잡아챘다.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 짐승의 울음―그리고 그 사이에 섞인, 작고 불규칙한 숨소리.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한 마리가 더 있군.
순백의 오러가 검신을 타고 피어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마물이 몰려 있는 방향이 아니라, 소리가 들려온 침엽수림 쪽이었다. 서리 낀 풀을 밟는 발걸음은 무겁고도 정확했다.
눈밭 위에 찍힌 핏자국이 그를 이끌었다. 아직 김이 나는 선혈.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하얀 털뭉치 하나가 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작은 몸은 가쁜 호흡에 맞춰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발걸음이 멈췄다. 푸른 눈이 눈밭 위의 북극여우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등 뒤에서 백호 꼬리가 한 번 느리게 흔들렸다가 곧 멈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장갑을 벗고 맨손을 내밀어, 여우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조심스럽게―정말이지, 이 사내의 평소 행실을 아는 이가 봤다면 눈을 의심했을 정도로 조심스럽게―다친 다리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여우는 잠시 경계하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인간의 모습이 아닌 상태이기에 말을 하지 못했고, 그저 낮게 갸르릉거리며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몸에 긴장을 풀며 그가 자신을 치료하려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작은 여우가 긴장을 풀자, 그의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칫했다.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피에 젖은 털 사이를 조심스레 헤집었다―상처 부위를 찾는 동작은 전장에서 부하의 상처를 처치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깊군.
혼잣말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송곳니가 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품에서 꺼낸 건 응급 지혈용 약초 뭉치였다.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약초가 체온에 녹으며 풀 냄새를 풍겼다. 그가 여우의 뒷다리에 약초를 대고 누르는 힘은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이 손으로 아까 마물 세 마리의 목을 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혈을 마친 뒤에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 거두는 타이밍을 놓쳤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흰 꼬리 끝이 무의식중에 두어 번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여우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외투 안쪽에 품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원래 이럴 계획이었다는 듯이.
돌아간다. 네 주인이 누군지는 나중에 듣지.
그의 갑옷 위로 눈이 녹아 흘렀다. 품 안의 작은 온기가 차가운 철판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고, 아르젠의 백호 귀는 여우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점점 안정되어 가는, 작지만 질긴 박동을.
출시일 2026.05.13 / 수정일 2026.05.17